▲ 임영섭 재단법인 피플 미래일터연구원장

지난달 9일 대전지방법원은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고 김용균 사망사건 항소심에서 한국서부발전 전 대표와 본부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점검구 덮개 미설치, 2인1조 작업 미실시에 대해서는 안전조치 위반을 인정했지만 점검시 컨베이어 벨트 가동을 중지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점검작업 중 컨베이어 가동중지는 핵심 조치사항인데 이 부분에 면죄부를 준 것이다.

안전보건공단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끼임 사고로 연 104명이 사망하고 이 중 컨베이어에 끼인 사고가 10%에 달한다. 끼임 사고의 55%가 점검·청소 등 비정형작업 작업 중에 발생했고, 가동을 중단하고 잠금장치를 하지 않은 것이 사고원인의 82%를 차지했다.

항소심은 사고 당시 낙탄 처리작업은 수행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설비점검 작업에 대해서는 “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 92조1항의 문언과 취지에 비춰 볼 때, 사업주가 기계의 운전을 정지할 것이 요구되는 ‘정비·청소·급유·검사·수리·교체 또는 조정 작업 또는 그 밖에 이와 유사한 작업’은 기계가 정지된 상태에서 그 목적의 달성이 가능한 작업을 예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함이 상당하다. 그런데 … 설비점검 업무는 육안이나 소리를 통해 컨베이어벨트의 가동상태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것으로 기계가 운전 중인 가운데에서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작업이어서, 위 안전보건규칙 92조1항에 따라 안전조치의무가 부과되는 경우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판단은 두 가지 면에서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하나는 점검작업과 점검 후속조치 작업을 구분하지 않으면서 사실관계를 잘못 인식한 점이다.

당초 원심은 “컨베이어벨트와 아이들러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가동 중 점검을 할 필요가 있으나, 점검에 따른 조치를 취하는 작업이나 낙탄 제거작업은 사고의 위험성이 높아 벨트의 가동을 중지한 상태에서 실시돼야 한다. 따라서 운전원들로 하여금 컨베이어벨트 가동 중 작업을 하도록 한 것은 안전조치의무를 위반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낙탄 처리작업 존재에 대한 논의는 별개로 하더라도 점검에 따른 후속조치 작업이 있었음은 어렵지 않게 인정할 수 있다. 항소심 스스로도 “현장 운전원들은 평소 컨베이어벨트의 가동 중에 점검구의 내부로 신체를 넣어 설비점검 등의 작업을 단독으로 수행하고, 설비에 이상이 있거나 낙탄이 발견되는 경우 해당 부분을 직접 사진으로 촬영해 조치했다”고 판시하고 있다. 사고가 있던 날 점검을 한 결과 설비에 이상이나 낙탄이 발견됐고 근접 촬영 또는 어떠한 조치를 하는 후속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고인이 신체를 점검구 안으로 넣을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육안이나 소리’를 통해 ‘점검’하는 작업과 점검결과 이상이 발견돼 취하는 ‘후속조치’ 작업은 그 성격이 판이하다. 점검은 컨베이어의 가동을 필요로 할 수 있고 가동상태에서도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후속작업은 컨베이어 가동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작업으로 볼 수 없고, 신체가 벨트에 근접하거나 접촉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므로 반드시 컨베이어를 임시 정지시킨 후 작업이 이뤄져야 했다.

또 하나는 항소심 판단은 안전보건규칙 해당 조항의 입법취지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

위 안전보건규칙 조항은 정비·청소 등의 작업시에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으면 해당 기계의 운전을 정지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운전 중에 점검을 하도록 하려면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적절한’ 조치가 전제돼야 한다는 말이다. 대법원도 “해당 안전보건규칙과 관련한 일정한 조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해당 산업현장의 구체적 실태에 비춰 예상 가능한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인 안전조치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는 안전보건규칙을 준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21. 9. 30. 선고 2020도3996 판결).

실질적인 안전조치에는 점검구 덮개를 열면 컨베이어가 멈추도록 하는 연동장치나 작업자가 위험반경 내에 접근하면 컨베이어가 멈추도록 하는 장치의 설치가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조치가 어려우면 최소한 2인1조로 작업하도록 해 위급시 비상정지 장치를 작동시킬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앞에서 살펴본 사항을 종합하면 사고가 있던 날, 컨베이어벨트는 멈춰야 했다. 이를 간과한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사실관계를 오인했을 뿐 아니라 법리를 오해한 것으로 위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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