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이량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1908년 3월8일 미국 뉴욕에서는 1만5천여명의 대규모 여성노동자들이 임금인상, 노동환경 개선, 투표권 쟁취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모두를 위한 빵, 그리고 장미도!(Bread for all, and Roses, too!)”

당시 여성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장시간 일하고도 저임금에 처해 있었고, 참정권이나 노조결성의 자유 같은 권리도 전혀 보장받지 못했다. 이에 여성노동자들은 굶주림을 해소할 생존권을 표상하는 빵, 참정권과 같은 정치·사회적 권리를 표상하는 장미를 외쳤다.

위와 같은 여성노동자의 시위와 운동은 국제적인 공감을 얻었고, 매년 3월8일은 세계여성의 날로 자리매김했다.

이로부터 100년이 훌쩍 지난 2023년이다. 여성도 투표를 할 수 있게 됐고, 지난해 당선된 대통령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2018년, 매년 3월8일을 여성의 날로 지정했고(양성평등기본법 38조1항), 정부나 지자체에서 여성의 날 행사를 기획하거나 참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성노동자의 삶은 차별 없이 평등해졌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매년 ‘성별 임금격차’(gender wage gap)을 발표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안타깝게도 여성의 임금은 여전히 남성의 임금보다 적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는 1996년 OECD 가입 후 줄곧 꼴찌를 차지하고 있다. 가장 최근 값인 2021년 기준 여성노동자는 남성노동자에 비해 31.1%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 즉 남성노동자가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노동자는 68만9천원을 받는다. 두 번째로 격차가 큰 일본(22.1%)보다 9%포인트 높은 격차다. 명백히 구조적 성차별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수치다.

이러한 임금격차는 단순히 동일가치노동에 대해 성별에 따라 다른 임금이 지급되는 상황만을 포함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복잡하면서도 간접적인 여러 가지 성차별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채용단계에서부터 여성은 성차별에 노출된다. 여성들은 채용되지 않거나, 저임금 일자리에 채용된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는 정규직 채용 지원자 중 여성이 절반에 육박함에도 여성은 단 한 명도 채용하지 않는다. 또 다른 회사는 마찬가지로 여성노동자를 정규직에 채용하지 않는 반면 계약직 또는 하청업체 노동자 대부분은 여성노동다.

입사 후에도 여성은 성차별에 노출된다. 여성노동자는 승진 기회에서 남성 후배 노동자보다도 후순위로 밀리거나 아예 배제된다. 여성노동자가 승진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은 정부가 매년 공표하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미이행 사업주 명단’(남녀고용평등법 17조의5) 자료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여성 관리자 비율은 21.3%에 불과하다.

또한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면서도 출산과 육아는 여전히 여성의 경력을 단절해 임금 수준을 하락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다시 경제활동을 할 때가 되면 돌봄서비스와 같이 ‘여성’의 영역으로 여겨져 저평가된 일자리에 내몰리기 십상이다.

이 외에도 여성노동자는 ‘밥 짓기’나 ‘빨래하기’같이 ‘여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가욋일이자 본연의 업무가 아닌 일을 부당하게 부담하는 일도 있다. 남성 동료나 고객의 성폭력에 노출되기도 하고, 혹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극단적 폭력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여성노동자가 거리에 나와 빵과 장미를 요구한 지 1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여성은 일상에서 숨 쉬듯 차별과 폭력을 마주하고 있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대통령의 배우자조차 “아직도 여성들은 다양한 사회적 불평등과 범죄에 노출돼 있다”고 발언하는 지금이다.

올해 3월8일에도 ‘성차별 철폐, 성평등 쟁취’를 외치며 거리로 나온 수천명의 노동자가 있었다. 115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죄가 되지 않는 것이다. 성평등을 향한 투쟁의 3월8일들이 쌓여, 언젠가는 축하와 기념만 남은 3월8일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