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마침내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정책이 발표됐다. 지난 6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확정한 후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그 내용을 발표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미 윤석열 대통령은 손보겠다고 말했고, 대통령에 당선돼 취임한 뒤에는 수시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니 새롭다 할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제야 구체적인 개편안이 나왔다는 게 조금 의아할 정도다. 사실 지겹도록 들어왔었던 윤석열표 노동시간 개편 방안이었다. 어쨌거나 윤석열 정권이 추진하겠다고 확정한 것이고, 이 나라 노동자권리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니 살펴봐야겠다.

2. 이정식 장관은 이번 제도 개편의 방향에 관해서 “우리나라 근로시간 제도는 근로시간이 곧 성과가 되는 공장제 생산방식을 상정하여 주 단위 상한 규제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면서, “2018년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주 52시간제를 도입하였으나, 획일적·경직적인 주 단위 상한 규제 방식은 바뀌지 않았으며 그 결과, 현재의 근로시간 제도는 근로자와 기업의 근로시간 선택권을 제약하고 날로 다양화·고도화되는 노사의 수요를 담아내지 못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주 12시간 한도로 연장근로를 제한하는 현행 근로시간제가 공장제 생산방식을 상정해 마련·운영돼 획일적이고 경직적이어서 노동자의 노동시간에 관한 선택권을 제약한다니, 다양화·고도화되는 노사의 수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니, 나는 뭐라 말해야 하나. 할 말이 없다는 게 아니라 할 말이 너무도 많아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어쨌든 이렇게 이번 개편 방안의 방향 내지 취지를 노동부 장관이 밝힌 것이니 그의 말을 살펴보자.

이 장관의 말은 주 단위로 최장 노동시간의 한도를 정해서 규제하는 것이 획일적이고 경직적이라서 노동자의 선택권을 제약하고 다양화, 고도화되는 노사의 수요를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일, 1주간으로 노동시간의 한도를 정해서 규제하는 노동제는 무엇인가. 1일 8시간 노동제는 무엇이고, 주 48시간, 44시간, 그리고 40시간, 더 나아가 35시간의 노동제는 다 무엇인가. 노동자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것 말고 무엇이겠는가.

1886년 5월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해서 총파업투쟁을 했던 것은 당시 노동자들이 공장제 생산방식에서 일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선택권을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이고 경직되게 요구해서 투쟁했다는 것인가. 그 뒤 나라마다 이를 법정근로시간으로 노동기준법에 담아 규제하고 있는 것도 노동시간에 관한 노동자의 선택권을 제약하고, 다양하고 고도화되는 수요를 담아내지 못하는 제도라서 이제는 개폐돼야 한다는 것인가.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라고 말한다. 1일 8시간제와 이에 따른 1주 48시간제, 그리고 이를 단축해왔던 1주 44시간제, 40시간제, 나아가 35시간제에 이르는 역사였다. 그런데 오늘 윤석열 정권의 장관은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에 관한 노동자의 선택권을 박탈해온 역사라고 말하는 것이 된다. 윤석열 정부의 장관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하지만, 이 세상에서 1주일에 64시간, 69시간 노동자를 일하도록 하는 것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내세우는 나라가 이 대한민국 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이날 장관은 계속해서 “산업현장의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3년 만에 급격히 주 52시간제를 도입한 결과, 많은 기업들이 위법과 적법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서 소위 포괄임금이라는 임금약정 방식을 오남용하여 장시간 근로와 공짜야근을 야기하고 있다”고, “주 상한 규제에 집중된 제도 운영으로 근로자의 보편적인 건강권과 휴식권에 대한 논의는 진전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사용자가 포괄임금제를 악용하고 장시간 근로와 공짜야근으로 노동자들을 사용하는 것이 어떻게 주 52시간제로 인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주 52시간제로 제한하니 사용자가 이를 위반해서 장시간 근로와 공짜야근을 시킨다는 것인지, 주 52시간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없었던 포괄임금제를 사용자들이 새로 도입해 악용하고 있다는 것인지 도대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하겠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법이 도입된 것이 어째서 노동자의 보편적인 건강권과 휴식권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인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는 말을 하고 있다.

3. 주 52시간제는 연장근로를 포함해서 1주간에 52시간 한도로 사용자가 노동자를 사용해야 한다는 노동시간제도를 말한다. 이 나라에서 노동제의 역사를 살펴보면,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1일 8시간 노동제가 주창됐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의 주요한 요구고 쟁취 과제였다. 따지고 보면, 1953년 근로기준법에 1일 8시간, 1주간 48시간제에 관한 근로시간제가 도입됐던 것도 이런 운동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뜬금없이 우리 노동법에 도입된 노동제가 아니다. 이후 1주간 48시간제가 44시간으로, 40시간으로 단축돼 현 근로기준법 제50조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 근로기준법 50조에서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1항),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2항) 규정한다. 110조는 규정을 위반한 자(사용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규정은 사용자는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해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고, 이를 위반한 경우 징역형 등으로 형사책임까지 지게 된다는 것이라서, 만약 이러한 법규정이 제대로 집행되기만 해도 이 나라 노동자는 1주 40시간 범위 내에서 실제 노동을 해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 이상하다. 사실 이상할 것도 없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면, 국민이면 누구나 아는 것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근로기준법 53조에서 당사자 간 합의로 1주간에 12시간을 연장근로할 수 있도록 규정했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는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사 당사자가 합의하면,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해서 할 수 없도록 한 50조의 근로시간을 1주간에 12시간을 연장해서 할 수 있어 사용자가 시키고 노동자가 하면 50조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주 52시간제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엉터리법(53조)의 존재를 전제로 한 ‘엉터리 입법’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는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다 하고 있으니 아무런 문제도 없다.

조금 곰곰이 생각해보자. 노사 당사자가 합의하면 1주 12시간까지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한 근로기준법 53조와 1일 8시간, 1주 40시간으로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50조에 관해 한번 생각을 해보자.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한 근로기준법 50조는 노예노동을 규제하는 법규정이 결코 아니다. 어디까지나 노사 당사자 간 계약 자유의 원칙에 입각해 체결하는 근로계약에서 정한 근로시간을 규제하기 위한 법규정이다. 노사 당사자 합의로 정한 근로시간의 한도를 규제하기 위한 법규정이지, 노사 당사자 간 합의하지 않고 사용자가 강제적으로 노동자를 사용하는 걸 규제하는 법규정은 아니다. 많은 나라들에서 근로기준법 50조와 같은 형식을 통해서 노동제를 도입·운영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근로기준법 53조와 같이 당사자합의로 그 예외를 허용하는 법규정이다. 사실 53조 법규정의 존재는 근로기준법 50조의 존재 이유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50조에 규정한 근로시간이 근로계약 등 당사자 간 합의로 정한 것일 수밖에 없는데, 당사자끼리 합의로 해당 근로시간을 1주 12시간까지 초과해서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니 말이다. 오래전부터 나는 근로기준법 50조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법해석을 주장해왔다. 근로기준법 53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기능하도록 해석해야 한다고 말이다. 노사 당사자가 사전에 정할 수 있는 근로시간의 경우, 그것이 근로계약, 단체협약, 취업규칙, 노동관행 등 그 무엇에 의해서 정하는 근로시간이라도 50조가 적용돼 규제되어야만 하고, 이렇게 사전에 정할 수 없는, 급박한 사정인 경우 53조에 따라 그 예외로서 연장근로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 나라에서는 근로시간에 관한 근로기준법을 집행해야 할 법원도, 노동부도 근로계약이든 뭐든 당사자 간 합의만 있으면 사용자는 53조에 따라 연장근로를 시킬 수 있다고 판결하고 단속해 왔기에 50조는 법으로서 존재 이유를 잃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노동제를 무력화시킨 법해석을 전제로 주 52시간제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입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이마저도 노동시간에 관한 노동자의 선택권 운운하면서 주 단위가 아닌 월, 분기, 연 등으로 단위 기간을 확대해서 특정한 주에는 52시간을 초과해서 사용자가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추진하는 것이다. 노동제에 대한 무지에 나는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4. 노동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이번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의 취지로 밝혔지만, 노동자권리에 있어서 노동자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말은 노동자가 선택하는 낮은 수준의 노동자권리를 국가가 방치하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에게 계약 자유, 선택권이란 사용자로부터 보다 더 착취당할 자유까지 포함한다.

임금·근로시간 등 노동자권리의 최저 기준은 국가가 법으로 정한다. 거창하게 노동법이라 말하지 않아도 근대 자본주의 초기 공장법조차도 그랬다. 최저임금법, 근로기준법, 비정규직법 등 이 세상에서 노동자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은 사용자가 근로계약 등을 통해서 노동자가 선택하는 노동자권리를 부정하고 있다. 노동자의 선택권 보장 운운하게 되면,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으로 일할 노동자의 선택권을,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 이하로 일할 노동자의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으니 선택권 보장을 위해서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된다. 보다 높은 노동자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노동자의 선택권을 부정하는 법을 선택했다. 근로시간도 노동자가 사용자와 합의로 정한 시간을 제한해서 보다 적게 하도록 한 것이다. 임금 등 기존 권리 수준을 삭감하지 않고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 이것이 노동운동의 역사이자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다. 그런데 이런 역사를 되돌리고 있다. 노동시간을 늘려 그만큼 임금을 더 받도록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은 노동제의 역사에서 퇴보로, 반동으로 기록될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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