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올해는 노동위원회법이 제정된 지 70년이 되는 해다. 노동위원회법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3년 3월8일 노동조합법·노동쟁의조정법과 함께 태어났다. 전쟁 중에도 노동자들이 방직공장에서, 광산에서, 부두에서 격렬하게 파업투쟁을 하면서 노동위원회법이 민법이나 상법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윤석열 정부 첫 중앙노동위원장인 김태기(67·사진) 위원장은 “노동위원회법 제정 당시와 달리 지금은 노동위 사건의 10건 중 9건이 개별 노동자들의 권리구제에 쏠려 있다”며 “그런데 노동위 업무 처리 방식은 70년 전과 같이 노동조합과 사용자의 분쟁에 맞추고 있다 보니 개별 분쟁도 집단 분쟁처럼 처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위의 축을 바꾸는 ‘노동위 발전방안’을 마련 중이다. 그는 분쟁 당사자 간 화해에 의한 해결을 지향하는 미국의 ‘대안적 분쟁해결 제도(ADR,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를 주목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 위치한 중노위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노동위 발전방안을 들었다.

- ‘노동위 발전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별 분쟁이 집단 분쟁처럼 처리되는 것을 바꾸겠다고 했는데.
“70년 전 노동위를 처음 만들 때는 집단적 노사관계를 전제로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노동위를 찾는 사람의 80%는 취약계층이고, 사건 90% 가까이가 해고나 차별·괴롭힘 같은 개별 근로자 권리구제 사건이다. 그런데 노동위 업무 처리는 여전히 노조 사건을 다루듯이 한다. 노조가 있는 곳은 큰 기업, 공공기관들이 많고 노조 자체도 덩치가 크다. 요즘 노동위를 찾는 ‘사장님’들은 근로자나 다를 바 없는 영세하고 취약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노동위의 업무처리 방식은 무척 복잡하다. 징계와 해고 사건이 많은데 대부분 (판단) 요건이나 절차가 명확한 편이고 이미 판례도 많이 축적돼 있다. 딱 봤을 때 견적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판정 업무에 대안적 분쟁해결 제도를 접목하고 당사자들의 자주적 협상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노동위원회의 교육기능을 강화하고자 한다.”

- 노동위 발전방안으로 제시한 ‘대안적 분쟁해결 제도’란?
“미국은 ADR 제도로 80~90% 이상이 중재로 해결된다. 협상을 기반으로 화해와 중재를 많이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신청취지를) 인정한다고 권리구제가 되지 않는다. 실용성 있는 권리구제가 필요하다. 노동위는 서비스를 해야 한다. 일차적으로는 신속·공정 모토에 편리함을 더하는 것이다. 원격회의가 가능하도록 e노동위원회 시스템을 만들겠다. 자료제출도 편리하게 바꾸고 조사관과 영상회의도 할 수 있다. 심문회의는 왜 원격회의로 못하나? 가능하게 바꿀 것이다.”

“판정 업무에 대안적 분쟁해결 제도 접목”

- 일부 지노위에서는 이런 개편방안이 이미 시도되고 있고 이것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는데.
“지금 노동위에 사건이 폭증하고 있다. 조사관들이 감당이 안 될 정도다. 보통 조사관들이 조사보고서를 쓰는데 사건당 분량이 대략 150쪽에 달한다. 보통 70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쌍방의 주장을 듣고, 또 현장에 직접 나가기도 한다. 심문회의 후 판정이 나온 뒤에도 결정문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엄청 든다.

지금 사건이 몰리는 대표적인 곳이 경기지노위다. 사건 접수 속도를 조사관들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딱 보면 답이 나오는 뻔한(전형적인) 사건들이 많다. 경기지노위가 ‘화해’를 많이 한다. 다음이 서울지노위다. 법원도 비슷한 구조다. 법원이 요즘 사건을 화해로 돌리는 데 이유는 판사가 일이 너무 많으니까 감당이 안 돼서 그렇다.

조사관들이 일이 많은데 조사수당은 한 푼도 없다. 근로감독관을 하면 월 25만원의 조사수당을 주는데 지노위 조사관으로 오면 0원이다. 업무는 과중하고 수당은 없으니 자발적으로 노동위 조사관으로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중노위 조사관 업무는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이 돌아가며 맡는데 ‘의무복역’이라 할 정도로 기피하는 편이다. 사무관 승진시 노동부 본부 등을 한 번씩 거치도록 했는데 나이가 적으면 노동부로, 많으면 노동위로 가는 관행이 있다. 지난해 경기지노위 부당해고 구제사건(3천19건 처리) 화해율은 37.8%, 취하율은 39.9%로 합치면 77.7%다. 전국 1등으로 지난 8일 전국 노동위원장 간담회에서 모범 노동위원회 상을 받았다.

- 조사관의 전문성·공정성도 의심받고 있다. 경기지노위 조사관이 지난달 해고자가 제출한 결정적인 증거자료를 회사쪽에 몰래 전달하려 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본지 2월8일자 2면 “해고자 제출 자료 사측에 몰래 알린 경기지노위” 기사 참조>
“해당 보도를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 노동위에 비상이 걸렸다. 경기지노위에서 진상조사를 했는데 해당 조사관이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업무미숙으로 저지른 실수라고 들었다. 고의는 없었다고 한다. 해당 조사관을 사건에서 배제하고 경기지노위 전체 조사관을 대상으로 교육을 했다. 앞으로도 조사관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생각이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이제 단체교섭·파업으로 분쟁 해결 못 해”

-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만약 법안이 통과되면 노동위에 집단 분쟁이 늘 수도 있다. 노동위 발전방안에는 이런 내용은 없나?
“단체교섭 틀을 가지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은 이미 한계에 있다. 제조업 시대 균질적인 노동을 전제로 자본과의 단체교섭이 먹혔다. 지금 사용자가 자본의 힘만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정보와 기술의 시대다. 근로자들도 디지털화·개체화돼 있다. 단체교섭이 효과적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노조법 개정 여부를 떠나 최근 당사자적격을 둘러싼 다툼도 늘어나는 추세다.
“복합신분 근로자가 많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순수한 근로자는 점점 줄어들고 거래관계가 복잡해진 만큼 사용자성을 확장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단체교섭으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나라는 없다.

근로자성이 논란이 되는 노동위 사건들을 보면 헤어디자이너 등 직접 출자한 근로자가 제기하는 구제사건이 많다. 이들은 노조나 단체교섭에 관심이 없다. 빨리 다툼을 해결하길 원한다. 그런 분쟁을 신속하게 해결하는 게 노동위 발전방향이다.”

“국회의원보다 중노위원장으로 할 일 더 많아”

- 국민의힘 주류그룹 공부모임에서 윤 정부의 노동개혁에 대해 “반노조로 흘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노동개혁이 왜 문제인가?
“대부분 연구 결과를 보면 노조는 중산층을 만드는 큰 힘이다. 저소득층의 월급을 올리고 고용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노조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순기능에 주목해야 한다. 노조가 약화하면 정부도 그런 역할을 할 수가 없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은) 노조의 역기능을 우려하는 것이다. 대기업·공공기관 노조까지 보호를 받으니 격차가 벌어지고 불평등이 커진다고 한다. 그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노조가 가진 특권이 아니라) 대기업·공공기관이 가진 특권이 많은데 이것을 싸잡아 노조 문제로 다뤄서는 안 된다. 대기업은 시장에서 독과점적인 지위를, 공공기관은 정부가 보장한 독점적 지위를 가진다. 이런 것을 바꾸는 게 개혁이다. 예컨대 은행은 임금이 높다. 은행은 확실하게 독과점 체계다. 불평등은 노조만 개혁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독과점을 경쟁체제로 바꾸는 게 개혁이다. 지금 시대 금산분리가 왜 필요한가.”

- 최근 ‘광폭 행보’로 ‘총선 출마설’이 나오고 있다.
“국회의원보다 중노위원장으로 할 일이 더 많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아이디어와 열정이다. 앞으로 노동위에서 3년이 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위에 대해 사람들이 너무나 모른다. 예산 당국도, 행정안전부도 노동부 예산·인력을 쓰면 된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국민이 볼 때 노동위가 ‘세금 쓸 만한 기관’으로 인정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조용히 찌그러져 있으면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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