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토피아

이것은 호러물이 아니다. 그런데 등골이 더 서늘하다. 약육강식 자본주의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속에서 ‘좀비’가 돼 가는 사람들 이야기다. 방서현 작가의 장편소설 <좀비시대>(리토피아·1만4천원·사진)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자 비극, 그리고 디스토피아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여긴 참 이상해. 내가 근로자가 아니래”

20대 청년인 주인공 연우는 ‘수재교육’에 학습지 교사로 발을 디딘다. 수재교육은 그럴싸한 이미지 광고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동종업계 최단 기간 성장해 국내 톱에 오른 학습지 회사다. 연우도 ‘재택근무와 출퇴근 자유, 월 250만~300만원 이상 급여’라는 신문광고를 보고 이곳을 선택했다. 임용고시를 보기 전 공부할 시간과 돈이 필요했던 연우에겐 괜찮은 조건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역시 그에겐 소중하기만 하다. 산 중턱에 위치한 수재교육 연수원에서 열린 신입교사 교육에서도 멋진 미래를 그려 보여준다.

그의 기대는 금세 무너진다. 연우는 울며 겨자 먹기로 ‘위탁사업계약서’에 서명하면서 일을 시작했고, 그가 인수인계한 교실(회원)은 알고 보니 퇴회와 휴회가 속출하는 사고투성이였다. 지구장은 퇴회 처리를 해 주지 않고 “안고 가라”고 한다. 그건 연우가 대신 회비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지구장은 회원을 늘리라고도 압박한다. 연우는 직접 전단지를 만들어 거리에서 영업을 뛴다. 처음엔 효과가 있는 것도 같았지만 결국은 소용없는 짓이었다.

연우는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꽉꽉 채워’ 일했지만 그가 손에 쥔 ‘수수료’는 100만원 남짓이다. 아니, 늘어만 가는 휴회를 처리해 주지 않아 대신 낸 회비, 주유비와 사무실 행사비, 지구 회식비, 한 달 식비 등을 계산하니 실제 수익은 그 절반에 그쳤다.

이런 학습지 교사의 현실은 그보다 먼저 일을 시작한 대학시절 친구 수아의 현실이기도 하다. 갑자기 집안 형편이 나빠져 대학을 중퇴한 뒤 소식이 끊긴 수아를 이곳에서 만났다.

특고 노동자 스러져 가는 한국 사회 민낯 고발

“여긴 참 이상해. 분명히 고용돼 있는데 근로자는 아니고, 회원은 회사에 가입됐는데, 책임은 우리가 지고.”

수아는 혼란스러워하는 연우에게 전단지를 만들어 보라는 등 여러 조언을 해 주기도 했지만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연우는 수아가 자신이 살던 고시원 건물에서 투신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알고 보니 수아가 관리하던 과목은 200개였으나 실제 관리한 과목은 50개 남짓. 나머지는 모두 ‘가라’였고 남긴 빚만 3천만원이 넘었다.

회사는 수아가 우울증을 앓았다며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하다. 우울증 때문이 아니란 것을 아는 연우는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관리자와 회장을 어렵게 찾아가도 해결이 안 되자 본사 앞 1인 시위에 돌입하며 회사의 사과를 요구했다. 1인 시위를 중단하라는 회유와 협박 속에서도 멈추지 않은 연우. 그는 의문의 차 사고를 당하거나 뜬금없이 공금횡령 혐의로 해고당하더니 급기야 누군가에게 납치된 뒤 죽음을 당해 도시에 버려진다.

결과가 다소 충격적이지만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정작 특수고용 노동자를 기득권으로, 부패집단으로 모는 현실에서 누가 연우와 수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줄까. 더 많은 ‘좀비’를 양산하고 그들을 착취해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해 가진 사람들 배 불릴 궁리만 하는 천민자본주의, 한국 사회의 민낯을 일격하는 작가의 고발에 등골이 서늘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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