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인혜 안전관리 노동자

엄마는 16년간 노래방을 하셨다. 석유화학공장·자동차·조선소 노동자들의 주요 퇴근길에 위치했다. 비교적 장소가 좋았다. 공장 노동자들이 손님으로 자주 왔다. 당시엔 주 68시간 일하는 시대였다. 사실 말이 68시간이지 공장 설비를 증설한다거나, 정기 보수공사 기간엔 공장 노동자들은 주 80시간 이상씩 일했다. 물론 그만큼 초과수당을 받긴 했다. 월급날이면 엄마 노래방에서 밤새껏 놀곤 했다.

그러던 중 엄마가 때아닌 경찰서에 갈 일이 생기고 말았다. 노래방에서 놀던 중년 노동자 한 명이 노래방에서 나오는 길에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었다. 이 사건 때문에 잠깐 조사차 경찰서에 들르게 된 것이다. 이후 중년 노동자의 직장 동료들이 전해 준 이야기로는 고인은 대형 프로젝트로 인해 일주일에 사나흘은 일만 했다. 프로젝트가 거의 끝나갈 즈음 뒤풀이 삼아 놀다가 그렇게 됐다. 병원에선 심혈관계질환으로 사망했다고 했다. 한마디로 과로사였다. 장시간 노동이 사람에게 좋지 않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게 됐다. 아무리 돈 잘 벌어도 갑작스레 숨이 끊어진다면 잘 버는 게 아닌 상황이 되니까. 잘 살려고 돈을 버는 것이지, 돈 벌다 죽으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즈음 전 직장에선 말이 52시간이지, 실제로는 60시간 이상 일했다. 새벽 시간에 출입자를 확인하고, 그날 작업 준비하고 현장 안전점검 후 각종 서류를 점검하다 보면 퇴근시간이 최소 30분, 또는 최고 1시간 이상 늦어졌다. 심지어 비파괴검사라도 하는 날이면 새벽 시간까지 회사에 묶여 있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이 시간은 노동시간으로 치지 않았다. 결국 그만큼의 수당을 받지는 못했다. 또한 주 52시간제라고 해도, 프로젝트나 정기보수공사 기간엔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에도, 공휴일에도 출근했다. 당연히 피로를 달고 지냈다. 피곤한 상태가 지속됐다.

새벽 6시에 출근해 저녁 6시30분에 마쳤다. 주말은 그나마 나았다. 격주 출근에 오전 7시30분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했으니까. 그래도 시간이 늘 부족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다 보니 퇴근 후 씻고 저녁 식사하고, 잠깐 쉬면 쓰러지다시피 잠들었다. 당연히 4년 내내 자기계발할 시간이 없었다. 산업안전기사 시험은 응시만 해 놓고 제대로 치지를 못하거나, 어떻게 필기시험을 쳤지만 두 번에 걸쳐 치르는 실기시험은 도저히 공부할 시간이 나지 않았다. 연차를 쓰려 해도 회사에 일이 많다며 눈치를 주기도 해서 4년 내내 연차를 단 한 번도 쓰지 못했다. 그동안 단 한 번 병가로 하루 쉰 것 말고는 휴가기간을 제외하면 계속 일했다.

현장에서 작업하는 현장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정기보수공사나 대형 프로젝트 기간에 그들의 표정이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면 얼굴에 피곤함이 묻어났다. 심지어 동작이 둔해지는 게 보였다. 금요일이나 주말 즈음엔 크고 작은 안전사고들이 발생했다. 바닥에 있는 자재를 제대로 못 보고 지나가면서 정강이나 무릎에 멍이 든다거나, 발목을 접질린다거나, 망치를 이용해 볼팅 작업을 하던 도중 자기 손가락을 찧는 경우까지 있었다. 특히 지병이 있던 현장직 노동자들은 그 피로한 얼굴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짙게 드리우기도 했다. 당연히 큰 공사 도중이나, 공사가 끝난 직후엔 벌어 둔 돈 중에서 상당한 비율을 병원비로 썼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 52시간 노동에도 52시간은 제대로 준수되지 않았다. 중소기업이나 하청은 그 정도가 훨씬 더 했다. 실제로는 그 이상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결국 업무 부담이 점점 늘어나게 됐고, 이러다 진짜 죽을지도 모르겠다 싶어 다른 회사로 옮겼다.

좀 더 큰 회사로 옮기고 나니 업무 부담이 많이 줄었다. 되도록 주 5일 근무, 일 9시간 근무를 최대한 지키는 분위기였다. 적응 기간을 보낸 이후 퇴근 후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시간, 독서실에서 산업안전기사 시험을 준비하는 여유가 생겼다. 자기계발할 시간이 생겼다. 회사에서 일할 때도 좀 더 집중도 있게 하는 건 물론이다.

윤석열 정권이 경영계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며, 주 52시간 노동제를 주 69시간까지 확대한다고 한다. 비록 여러 조건을 걸긴 했지만, 주 52시간제 시절에도 52시간이 충분히 무력화될 수 있다는 걸 경험해 왔다. 정부에서 제안한 ‘조건’은 공염불일 뿐이란 사실을 경험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번 개정안은 경영계의 요구만 관철한 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특히나 11시간 연속휴식까지 무력화하는 방안은 노동자의 건강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다.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면서 과로에 시달리다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죽는 사람 이야기는 많이 줄어들었다. 주 52시간제는 이런 배경 때문에 시행된 것이니만큼 그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해 가고 있었다. 제도가 제대로 정착하면서,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방안이 도모돼야 할 텐데, 이렇게 접근하지 않고 있다.

안전하게 일하자는 수많은 노동자의 요구가 있다. 적절한 휴식과 주간노동시간, 그리고 자기계발할 시간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고민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전형적인 탁상공론으로 튀어나온 방안이다. 지금과 같은 노동시간 유연화는 누구를 위한 유연화인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간 개편은 노동자들의 안전은 물론 개인과 사회의 안전에도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여유 있는 노동’에 대한 사회부터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안전관리 노동자 (heine030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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