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서울 동교동주 바실리오홀에서 열린 414기후정의파업 쟁점 토론회에서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이 발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전기·가스요금 인상 중단 요구를 둘러싸고 진보진영 내부의 치열한 논쟁이 전개됐다. 횡재세 도입과 화석연료 사용량 감소를 비롯한 재생에너지로의 체제 전환에는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에너지 가격 인상의 정당성을 두고는 기후정의운동의 경로가 분화하는 양상이다.

414 기후정의파업 조직위원회는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 JU에서 기후위기 시대 공공요금 인상을 주제로 쟁점토론회를 열었다.

보수정부 시민권 탄압 포함 복합 위기
기후정의 체제 구축, 대중과 함께하려면?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발제에서 공기업 재정 건전성 우려에서 출발한 에너지 요금 인상 주장에 진보진영이 부합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나 교수는 “자본은 공기업 재정 건전성이 취약하다는 현상적 약점을 파고들며 민영화의 길을 대안으로 제시하려 들 것”이라며 “진보정치의 역할은 국가가 공기업에 대한 재정지원 책임을 등한시하지 않도록 요구하고 민영화 주장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교수는 에너지를 일종의 가치재로 정의했다. 가치재란 의료·교육·주택·공공의료처럼 경제학적으로 공공재는 아니지만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필수적인 최소한을 소비할 수 있어야 하는 상품 서비스다. 나 교수는 “에너지 자체가 가치재라는 질문 자체보다 민중의 경제적 존엄성 차원에서 사회적 최저수준을 합의해 해당 수준의 에너지는 가치재로 보는 게 타당하다”며 “다만 이윤 추구의 형태인 산업용 에너지 사용은 필수적 에너지 사용과 범주를 달리하며 따라서 가치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런 논의의 배경에는 기후정의운동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경로를 설정하기 위한 목표가 가미돼 있다.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은 “기후정의를 위해 체제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기후정의운동이 대중과 함께 정치적 힘을 획득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회피할 수 없다”며 “우리가 겪고 있는 보수정부의 노동권·시민권 탄압, 신자유주의와 재정 보수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일상의 삶 속에서 불만을 느끼는 대중과 접속해야 하며 이는 대중추수주의나 포퓰리즘에 굴복하는 게 아니라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운동의 힘을 만드는 필수적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에너지 요금 인상, 시장 대 공공 넘어야
에너지 요금 동결·인하, 다소비계층 이익

이와 달리 에너지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생태주의적으로 에너지 사용총량을 억제해야 한다는 요구에 근거해 나온다. 이런 관점에서 에너지 요금 인상이 더 이상 현재의 에너지 소비량을 유지해선 안 된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독립연구자 김병권씨는 “에너지 요금 인상 관련 논쟁은 시장주의와 사회공공성 가운데 선택하는 문제로 오해돼 왔다”며 “기후정의운동은 이 둘 사이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생태적 관점에서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원료가 지구생태계의 수용능력을 넘고 있는지 여부로 재화 성격을 달리 규정한다”고 강조했다. 에너지의 가치재 부합 여부의 논쟁을 벗어나 사용량을 원칙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요금을 동결할 때 주요한 혜택을 보는 것도 결국 에너지 다소비계층이라는 지적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1년 평균으로 보면 전체 가구 57%는 200킬로와트시(kWh) 이하를 사용한다”며 “각자의 에너지 사용량을 생각하지 않는 일률적 요금 동결 또는 인하는 에너지를 더 많이 쓰는 이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한편 414 기후정의파업 조직위원회는 다음달 정부세종청사에서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파업을 한다. 이를 위해 최근 핵심 요구를 간추리고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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