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숙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지난 6일 오전,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지난해 12월12일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발표한 ‘근로시간 개혁과제 권고안’을 대부분 반영했다. 노동계의 반대에도 “노동자를 위한 ‘선택권’ ‘건강권’ ‘휴식권’의 보편적 보장과 새로운 노동시간 패러다임을 구축하겠다”며 노동자를 위한 개정안으로 포장한 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의 원칙을 살펴보면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근로자 건강권 보호 강화 △휴가 활성화를 통한 휴식권 보장 △유연한 근무방식 확산이라는 4가지를 내세우고 있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이후 정부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에 매번 불만을 표출하며 노동시간 규제 완화를 요구해 왔던 재계는 이번 개편방안에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이번 노동시간 제도 개편방안의 내용이 자본의 노동시간 유연성 요구에 어떻게 화답했는지, 실제로 정부가 원칙으로 제시한 내용이 노동자의 몸과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확인해 봤다.

먼저 ‘노동자의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내용이다. 현행 주 52시간 상한제는 일주일동안 근로시간은 주 52시간을 넘지 못한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연장근로시간의 단위 기간을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에 따라 1개월, 분기, 반기, 1년 단위로 선택할 수 있다. 이렇게 됐을 때 1주 최대 노동시간은 69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사용주가 필요한 시간만큼 노동시간을 연장할 수 있기에 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시간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선택적근로시간제 정산기간도 늘어날 예정이라 노동시간은 더욱 ‘고무줄’이 될 예정이다. 결국 ‘노동자의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라기보다 사용자의 노동시간 선택권이 더욱 확대되는 것이다.

두 번째, ‘근로자 건강권보호 강화’ 내용이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조차 연장근로 허용시 11시간 휴식시간 보장을 권고했지만, 개정안에는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으로 만들었다. 연장근로를 할 경우 11시간 휴식시간 보장을 선택하거나 ‘1주 64시간’ 상한을 준수하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 인정기준 중 뇌심혈관계질환(과로사 포함) 인정기준은 12주간 1주 평균 60시간, 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이다. 그리고 평균 노동시간이 주 52시간이라도 업무부담 가중요인(7가지 요인)이 있다면 과로로 인한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고 있다. ‘과로 인정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랍시고 내놓은 셈이다.

더불어 그동안 연장근로를 해도 무료노동으로 문제가 많았던 IT·사무직의 포괄임금제·고정수당 오남용 문제에 대한 노동부의 해답은 포괄임금 폐지가 아니라 근로감독을 강화하겠다는 태도이기에 근본적인 노동자 보호 방안이 될 수 없다.

세 번째 ‘휴가 활성화를 통한 휴식권 보장’ 내용이다. 현행 보상휴가제를 ‘근로시간저축계좌제’로 확대·개편해 연장근로시간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임금 또는 휴가로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 제도 시행을 검토했으나 노동자들이 연차휴가조차 제대로 소진하지 못하는 현실에 가로막혔다. 실제로 이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려면 저임금을 연장근로로 보완해 왔던 지금의 임금체계를 개편해 안정적인 생활임금을 보장하는 것이 관건이다. 또한, 장기간 휴가를 대체할 수 있는 적정한 여유 인력 충원도 매우 중요하다. 현장에서 이러한 준비가 되지 않는 한 근로시간저축계좌제는 사용자의 비용부담을 낮추는 수단일 뿐, 오히려 노동자의 무료노동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네 번째 ‘유연한 근무방식 확산’이다. 선택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전 업종 1개월에서 3개월로, 연구개발은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겠다고 한다. 한국의 노동 현실에서 사용자의 시간 주권은 노동자보다 클 수밖에 없으며, 결국 선택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는 시간에 대한 자본의 통제권만 확대하는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선택권을 확장하겠다는 취지와는 다르게 여전히 모든 조항에 대한 합의와 결정을 ’근로자대표‘가 할 수 있다. 1997년부터 도입된 근로자대표는 많은 권한을 행사하고 있으나 법제화되지 않았다. 이번 근로시간 개정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근로자대표에 대한 선출 절차, 권한과 책무, 임기 등을 법제화하겠다고 한다. 근로자대표 법제화는 환영할 사안이나, 과반수노조 대표자가 아닌 개인이 근로자대표가 될 때 현장에서 다양한 노동자의 참여와 논의가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근로자대표 선출시 사용자의 개입이나 방해, 불이익 처우시 엄격히 처벌해야 사용자의 개입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정부에서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가입률을 높일 수 있는 여러 방안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번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은 노동자를 위한 보편적인 ‘선택권’ ‘건강권’ ‘휴식권’ 보장이라기보다는 사용자·자본을 위한 선택권 강화다. 자본의 노동시간 패러다임 구축을 위한 개악 법안이라 정리할 수 있다, 노동자를 기계처럼 쓰고 싶은 마음을 고스란히 반영해 만든 이번 개정안이 노동자의 몸과 삶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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