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연재 공인노무사(금속법률원 충남사무소)

한국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글로벌’한 국가였다. 30년 가까이 서울에 살다 처음 지방으로 이주해 놀란 점 중 하나는 수많은 이주노동자의 존재다. 번화가에 나가면 인도네시아 식당, 캄보디아 식당 등 이태원을 방불케 하는 이국적인 음식들이 가득하다. 이태원과 다른 점은 서빙을 담당하는 노동자가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메뉴판에도 한글이 없다는 것이다. ‘고향’이라는 이름이 붙은 식당에는 베트남 음식만 판매한다.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역의 공장과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이처럼 서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한국에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삶을 꾸려 가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2021년 정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 인구의 4%가 이주민이다. 노동력 공급이 부족한 지방의 경우 그 비율이 훨씬 높다. 이주노동자 비중이 충남 아산시는 10%, 충북 음성은 15%에 이른다. 이들은 대부분 농업·어업처럼 내국인 노동자가 부족한 산업에서 노동을 제공한다. 해당 산업 사용자들은 이주노동자 고용허가를 더 늘려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정부는 이를 수용한다.

한국 사용자 요구에 따라 이주노동자 수가 크게 늘고 있는데도 정부는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을 외면하고 있다. 정부가 허가한 이주노동자들의 기숙사 실태만 봐도 알 수 있다. 2021년 고용노동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를 사용하는 농·어업 분야 사용자 99%가 기숙사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중 70%가 ‘가설건축물’이다. 가설건축물이란 지붕·기둥·벽만 있고 토지에 정착하지 않은 임시 건축물을 의미한다. 흔히 땅의 기반을 다지지 않고 말뚝 등으로 고정시킨 서커스 텐트나 비닐하우스 시설, 땅 위에 얹어놓은 컨테이너박스를 생각하면 된다. 바닥이 지나치게 얇아 온도 조절이 되지 않고 화재와 수해, 폭설에도 취약하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설비도 갖추지 못한 기숙사에서 매년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2020년 12월 냉·난방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 2022년 2월에는 식품공장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불이나 인도 이주노동자가 숨졌다. 몇일 전 포천에서 사망한 태국인 이주노동자 기숙사는 돼지 농장을 개조해 만든 것으로 배설물과 악취로 가득했다고 한다.

정부는 이토록 열악한 기숙사를 정상화할 방안은 거들떠보지 않고, 오히려 기숙사 비용을 이주노동자 임금에서 공제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했다. ‘외국인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에는 “사업주는 표준근로계약서에 기재된 금액의 범위에서 숙식비를 징수할 수 있음”이라고 명시돼 있다. 사용자들은 이를 근거로 “원래는 안 됐는데 정부가 기숙사비를 임금에서 공제해도 된다더라”고 말한다. 한국어도, 노동법도 알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기숙사비를 임금에서 공제한다’라는 문구가 들어간 근로계약서에 서명한다. 그러고 나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어도, 경찰서를 찾아가도 “이미 동의했네요. 법적으로는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어요”라는 답변을 듣는다. 결국 노동부가 이주노동자의 임금에서 기숙사비를 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

속헹씨 사망 이후 이주노동자 기숙사산재사망 대책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노동부 장관은 숙식비 비용징수 지침을 폐지하고, 이주노동자에게 제공되는 주거환경에 대해 정확한 실태조사 하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폐기만 하면 될 기숙사비 징수지침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비닐하우스 내 시설, 컨테이너를 기숙사로 허가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에 노동부는 이렇게 답변했다. “가설건축물 필증은 지방자치단체가 내준다. 우리는 사용자가 필증을 가지고 오면 허가해 주는 것 뿐이다.” 지자체에 문의하면 “노동권 관련된 건 노동부 소관이다. 노동부에 문의하라”는 답변이 되돌아온다. 책임 미루기에는 환멸이 난다. 하지만 노동부 소관이라는 주장은 타당하다. 노동권에 관련된 것은 노동부 소관이다. 가설건축물 필증을 가지고 오더라도 해당 필증에는 사람이 살면 안 되는 건물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으니, 가설건축물 자체를 기숙사로 허가하지 않던지, 가설건축물의 경우 추가 현장조사를 하면 된다. 자기 책임이 명확하고, 해결할 방법이 있는데도 ‘소관’ 핑계를 대는 것은 해결 의지가 없다는 방증이다.

한국은 이제 이주노동자들을 돌려보낼 수 없다. 특히 지방은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문을 닫을 사업장들이 너무나 많다. 고령화 추세에 비춰 보면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이주노동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필요로, 정부가 주도해 이주노동자의 고용허가를 했다면 최소한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는가. 정부 기관들끼리 ‘소관’ 핑계는 멈추고 노동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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