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장준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사람은 대학 청소노동자다. 나의 인생에서 처음 만난 동지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청소노동자들은 나를 아들처럼 대했다. 나는 그들에게 “자기 일이 아닌데도 가장 밑바닥 노동자들을 위해 나서는 고마운 학생”이었다.

사실 이런 식의 호명과 관계맺기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도 않고 운동의 관점에서도 부적절하다. 20년 전에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했다. 청소노동자 스스로 조직하고 투쟁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동지’라 호명하고, 일방적이고 시혜적인 관계가 되지 않도록 역할을 재구성하자는 의견들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나는 이제 노조의 조직활동가로 성장했다. 그 사이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학생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노조’의 가장 든든한 연대단위다. 그러나 더 이상 ‘구원자’는 아니다. 청소노동자들은 2011년 홍대에서, 2012년 전주대·비전대에서, 2021년 신라대에서 그리고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덕성여대에서 싸우고 있다. 청소노동자 스스로 조직을 운영하고, 비조합원들을 조직하고, 거침없이 투쟁한다. 고 백기완 선생의 말씀을 빌리자면 청소노동자들은 ‘목숨을 건 딱 한 발 떼기’를 해냈다.

물론 어떤 모습은 과거와 똑같다. 청소노동자 조합원들은 여전히 자신을 “엄마들”이라 지칭하고 학생들과 젊은 활동가들을 딸, 아들같이 대한다. 학생들도, 직원들도, 연대를 하러 온 동지들 다수는 청소노동자 조합원들을 여전히 “어머니들”이라고 부른다. “총장은 엄마가 아니라서 우리 엄마들 마음을 몰라 준다”는 문제적 발언이 종종 나오기도 한다. ‘엄마들’이라는 호명이 나올 때면 나는 자녀가 없는 조합원들에게 마음이 쓰인다. 투쟁 과정에서 드러나는 성역할과 성차별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과거처럼 심각하게 고민하지는 않는다. 십수 년 동안의 투쟁으로 민주노조·사회운동·페미니즘을 경험한 ‘어머니들’은 이제 무엇이 문제고, 어떤 관점이 올바르고, 어떤 관계로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토론하고 투쟁하고 연대할 준비가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해나가고 있다.

이들은 대학의 청소용역업체들을 한데 모아 교섭하는 ‘집단교섭’으로 청소노동자 전체의 권리를 만들고, ‘최저임금’을 올리는 데 기여하고, 진짜 사장인 원청(대학·재단)과 맞서 싸우며 ‘외주화’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지하 구석에 있는 창 없고 좁고 퀴퀴한 휴게실을 바꾸고, 대학 내 모든 구성원의 권리를 함께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 동지들이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소중한 저항에 나선다. 여성노동자를 비정규직, 중간 착취, 저임금, 차별,과 폭력, 위험으로 내모는 추악한 질서에 균열을 내기 위해 모인다. 청소노동자·요양보호사·건강보험 상담노동자·언론노동자·도시가스 안전점검 노동자 그리고 이들과 연대해온 사람들이 한데 모인다. 쉼 없이 세상을 바꾸는 중이다. 이 동지들이 바로 우리 인생의 구원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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