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민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하면서, 우리는 남자들을 위해서도 싸운다./ 그들은 여성의 자식이고, 우리가 또 그들의 엄마이기 때문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의 삶은 착취당하지 않아야 하지만/ 마음과 몸 모두가 굶주린다. 우리에게 빵을 달라, 장미를 달라./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여성이 죽었다./ 빵을 달라는 아주 오래된 그들의 노래를 우리의 노래로 부르며 외친다./ 틀에 박힌 고된 노동을 하는 그들의 영혼은 작은 예술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알았다./ 그래, 우리는 빵을 위해 싸운다. 그러나 우리는 장미를 위해서도 싸운다.” (제임스 오펜하임의 시 <빵과 장미> 중)

3월8일, 115주년 세계여성의 날이다.

1857년 뉴욕, 장시간·불안정·저임금 노동과 차별에 맞선 의류·섬유산업 여성노동자들의 파업은 1859년 노동조합 결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1908년 뉴욕 루트거스광장에 모인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

“우리는 빵과 장미를 원한다.” “아이들은 노동이 아니라 휴식이 필요하다.”

일할 권리, 삶을 지속할 권리(빵)와 정치 참여의 권리(장미)를 주장하며, 수만의 여성노동자들이 뉴욕 도심을 행진했다.

1909년 2월28일, 미국 사회당이 개최한 전국여성의 날 집회, 같은해 11월 ‘2만인의 봉기’라 불리는 여성 섬유노동자들의 13주간 연속 파업.

1910년 8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는 독일의 여성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인 클라라 체트킨의 제안으로 ‘세계여성의 날’ 기념을 결의한다. 이듬해 3월8일 독일·오스트리아·덴마크·스위스 등 유럽 곳곳에서 첫 번째 세계여성의 날 집회가 열린다.

1917년 3월8일(러시아 구력 2월23일) 러시아 페트로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빵과 평화”를 외치며 여성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이는 2월 혁명의 도화선이 돼 차르 니콜라이 2세를 퇴위시켰고, 여성 참정권 등 여러 일과 삶의 권리들을 구현한다. 이후 ‘세계여성의 해’였던 1975년 유엔에서도 매년 3월3일을 ‘세계여성의 날’이라 기념하기로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1920년대 부터 여성의 날을 기념했다. 일제의 탄압으로 이어지지 못하다가 1985년 첫 ‘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 여성대회’가 열렸다. 2018년에는 ‘여성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했다.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는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3월 한 달을 ‘여성의 달’로 기획해 지역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계획했다.

먼저 지난 2일부터 지역 공공의료원, 대형마트, 소규모 상점, 대학, 국공립 어린이집, 대중교통 거점 등에서 지역 현장 여성노동자들과 시민들을 찾아뵙고, 여성 노동기본권 캠페인을 이어 가고 있다.

캠페인에서는 여성의 날을 상징하는 장미꽃과 꽃 모양 떡컵케이크, 메시지 카드를 배포하고 지역 여성노동 현실을 알리는 전시물을 게시했다. 지역사회에 필요한 여성노동 정책이 무엇인지, 현장 노동자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조사도 함께 진행했다.

공공의료원에서 만난 한 고령의 여성시민은 “태어나서 장미꽃을 받아본 것이 처음이다. 여성의 날이란 것이 있는지도 오늘 처음 알았다”며 “나이가 많은 여성노동자들의 삶이 참 어렵다. 앞으로도 우리 지역 고령 여성노동자들을 위해 오늘 같은 행사를 많이 열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캠페인에 참여한 어느 여성노동자는 꼭 필요한 여성노동 정책으로 ‘직장내 괴롭힘 및 성폭력 대응 지원체계 강화와 성인지적 산업재해 대응 체계 구축’을 꼽으며 “지역 여성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 사회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남성에 비해 낮지만 비정규직 비율은 오히려 높고, 성별 임금격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으로 여성노동자와 시민들이 마주하는 구조적 불평등의 늪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사회적 재난 시기, 돌봄노동을 비롯해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일과 삶의 문제들을 함께 톺아보고 일하는 여성, 일을 멈춘 여성 모두가 존엄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28일 오후 2시에는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대회의실에서 ‘지역 여성노동의 현실과 지역사회의 과제’를 주제로 ‘다른 내:일 포럼’을 개최한다. 공공 통계와 노동상담 사례를 통해 지역 여성노동자들이 마주한 고민들을 살피고, 실효적 정책 대안을 토론하는 자리를 가진다.

의료원 조리실 한편에서, 인문대 화장실 옆 휴게공간에서, 마트 계산대 옆에서, 장미꽃을 손에 쥐고 밝게 웃어 주던 지역 여성노동자들의 얼굴이 마음에 박힌다.

다시 오펜하임의 시를 읊는다.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하면서, 위대한 날들이 오리라./ 여성이 봉기한다는 것은 인류가 봉기한다는 것./ 더는 틀에 박힌 고된 노동과 게으름, 한 명의 안락을 위한 열 명의 혹사는 없다./ 삶의 영광을 함께 누리자. 빵과 장미, 빵과 장미.”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빵과 평화를” “존엄과 해방을” 외쳤던 1908년 미국의, 1917년 러시아의, 지금 여기, 세계 곳곳의, 우리 일하는, 일을 멈춘 여성 노동자들 모두의 일과 삶을 다시 생각한다.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recherche@cnnodong.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