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환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필)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대리했던 사건이 끝나면 승패와 상관없이 의뢰인들은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 사건을 졌을 때 의뢰인들의 감사 인사를 들으면 죄송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만, 좋은 결과를 받게 된 의뢰인들의 감사 인사를 받으면 이 직업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며 삶의 원동력이 된다. 최근 대리했던 구제신청 사건에서 다행히 좋은 결과를 보게 됐고, 의뢰인들은 감사 인사를 보내왔다. 즐거운 마음으로 그 사건의 소회를 써 본다.

해당 사건은 부당전보 사건이었다. 의뢰인들은 미화 업무를 수행하는 고령의 노동자들이었다. 회사는 서울 각지에 지부가 있었는데, 의뢰인들은 입사한 이후 한 군데 지부에서 계속 근무해 왔다. 업무의 특성상 새벽 출퇴근이 불가피했기 때문에 회사도 각 지부 인근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을 타 지부로 전보하는 경우는 없었다. 노동자들이 전보 신청을 하거나 직장내 괴롭힘과 관련된 경우가 아닌 이상 다른 지부로 배치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순환 전보를 실시하겠다”며 노동자들을 원거리 발령 조치했다.

회사는 한 지부에서 조직 내 갈등 문제가 불거져 조사를 해 봤더니 장기근속자들의 파벌 문제 등이 원인이라고 했다. 이에 노동자들을 대상으로도 순환 배치전환을 실시했다고 업무상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리고 회사는 ‘출퇴근 시간 1시간30분 이내 배치’라는 내부 기준에 따라 노동자들을 전보했기 때문에 그 합리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회사는 의뢰인들의 출퇴근 시간이 전보로 증가하긴 했으나, 그 정도로 생활상 불이익이 현저하게 크진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회사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먼저 접근 방식부터 잘못됐다. 조직 내 갈등 문제는 노동자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회사 차원의 조직문화와 구조 문제다. 회사는 특정 지부의 조직 내 갈등 문제를 조사하고 난 뒤 갈등을 해소한다며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상식적인 대책들이었다. 회사는 관리자에 대한 교육, 조직문화 개선, 고충처리제도 개선, 외부 전문가에 의한 조사 등 대책을 내놓았으며 순환 전보도 그 대책 중 하나였다. 그런데 회사는 조직 내 갈등을 해소한다고 하면서 순환 전보 외에는 어떠한 개선조치를 하지 않았다. 전보조치는 갈등 해소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될 순 있으나,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조직갈등 해소와 조직문화 개선을 한다면서 근본적인 대책은 전혀 이행하지 않은 채 노동자들에 대한 전보조치만 한다는 것은 조직 내 갈등 문제에 대한 책임이 노동자에게 있다는 회사의 잘못된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출퇴근 시간 1시간30분 이내’라는 배치 기준도 비합리적이었다. 회사는 인터넷 기사를 찾아봤더니 수도권 내 직장인들의 평균 출퇴근 시간이 1시간30분이라고 나왔기 때문에 배치기준을 정했다고 주장했다. 지금 봐도 말이 안 된다. 해당 기사는 단순 통계치에 불과하다. 해당 자료를 활용한다면 수도권 직장인들의 출퇴근 시간이 1시간30분이나 되니, 교통편을 확충하는 등 방법으로 출퇴근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활용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회사는 단순 통계치에 불과한 자료를 반드시 따라야 하는 의무인 것처럼 주장했다.

출퇴근 시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업무능률이 향상되거나 유지되는 것이 상식이다. ‘직주근접’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직장과 주거지는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워라밸(일과 삶 균형)은 잘 지켜지며 일에 대한 만족도도 올라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기존에는 평균 30분 정도 소요되는 지부에서 근무했던 노동자들을 1시간30분 이상 소요되는 지부로 발령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워라밸 붕괴가 예상된다. 심지어 의뢰인들은 20·30대의 젊은 연령대도 아니었다. 의뢰인들의 평균 연령은 60세로 고령자였다. 국가에서 실시하는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의 고령자들은 한 개 이상의 개인 질병을 앓고 있다. 허리나 무릎, 목 부위의 근골격계질환 증상을 늘 호소하고 있다. 고령의 의뢰인들이 1시간30분 이상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해 출퇴근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보통 무리가 아니다. 20·30대의 젊은 사람들도 왕복 3시간 이상 출퇴근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데, 고령자들은 그 부담이 더 크게 다가와 생활상 불이익이 커지는 것은 당연했다.

이런 내용을 정리해 서면을 준비했고 다행히 노동위원회에서는 의뢰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노사문제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용자들은 늘 노동자를 하나의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번 사건 또한 회사가 조직 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최선의 조치를 다 하고 노동자들에게 전보의 필요성을 설득했더라면 누가 회사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이번 사건이 회사가 노동자들을 하나의 부속품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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