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제3자 변제’ 강제징용 배상해법을 공식 발표한 6일, 한 시민이 용산역 광장에서 세워진 강제징용노동자상을 바라보고 있다. <정기훈 기자>

윤석열 정부가 2018년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을 한국 기업들을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지급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피해자와 시민사회, 야당은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에 면죄부를 준 최악의 굴종외교라고 비판했다.

“한국 기업서 재원 마련 재단 통해 판결금 지급”
일본 “역대 내각 입장 계승” 발표, 한일 수출규제 협상

박진 외교부 장관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내용의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 입장’을 밝혔다. 행정안전부 산하에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설치해 2018년 대법원의 확정판결 3건은 물론 현재 계류 중인 소송에서 원고승소 확정시 원고들에게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한다. 재단은 피해자 추모와 교육·조사·연구사업을 내실화하고 확대하기 위한 방안도 추진한다. 재원은 일본의 피고기업들이 아닌 한국 기업들이 마련한다. 박 장관은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하고, 향후 재단의 목적사업과 관련한 가용 재원을 더욱 확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 발표가 나온 뒤 일본 정부의 입장 발표도 이어졌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약식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 발표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확인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거 담화와 공동선언에 담긴 사죄와 반성 표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한일 정부는 또 수출규제 협의를 진행하는 동안에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대법원 판결에 반발하며 2019년 7월 대한국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단행했고, 한국은 일본을 WTO에 제소한 바 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며 “한일관계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기 위해서는 미래세대 중심으로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측 “대법원 판결 무력화, 일본 기업 면책”
시민사회·야당 “일본의 완승, 치욕의 날”

‘후폭풍’은 거세다. 무엇보다 생존 피해자들이 반발했다. 일본제철과 히로시마 미쓰비시 중공업 강제징용 피해자를 지원해 온 민족문제연구소와 법률대리인들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한국 행정부가 일본 가해기업의 사법적 책임을 면책시켜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이날 오전 외교부 앞에서 항의행동을 통해 “전범기업은 한 푼도 안 내는 일본 정부의 완승이며 최악의 외교참사”라며 “반인권·반헌법·반역사적 강제동원 굴욕해법 강행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정의기억연대는 성명을 내고 “이번에 제시된 해법은 일본 우익과 일본 정부 주장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한국의 완패고 일본의 완승”이라며 “2023년 3월6일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악의 날, 제2의 국치일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치욕의 날”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일본과 관계 개선을 위해 국민을 능멸하고 국가의 이익도 모두 포기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설명될 수 없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친일 굴종외교를 즉각 중단하고 강제징용 피해배상 방안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도 “일본의,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결정을 그대로 따르기만 한 이번 참사는 대승적 결단이 아니라 용납할 수 없는 우리 정부의 자발적 굴욕일 뿐”이라며 “윤 대통령은 즉각 철회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