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준 아유 대표

100만의 힘은 제대로 발휘될까

노조파괴 전문가를 붙이고 용역깡패를 투입하다가 경찰이 들어가 노조를 없애던 노조 깨기는 과거의 것이다. 정부는 회계 검증을 요구하며 노조 전체 이미지를 타격하고,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압수수색과 노동법을 바꾸려는 제도적 수준, 노조에 대한 혐오는 물론 간첩 색깔론 등 문화적 차원에 이르는 공세를 펼치고 있다.

양대 노총 조합원이 200만명을 훌쩍 넘어 300만명에 육박하고 민주노총은 100만 조합원을 훌쩍 넘는다. 이토록 거대한 시민조직이 국가권력의 공격을 받는 것은 물론 이런 공격이 퍼부어지는데 분노보다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까. 정부의 파상공세에 맞서 천만 이상의 힘을 발휘해야 할 100만의 민주노총이 10만의 힘이라도 발휘하고 있을까.

노동에 대한 정부의 파상공세가 나타난 배경에 노동시장 분할이 있다. 갑자기 등장한 상황이 아닌 누적된 조건이다. 이전 정부에서도 기대만큼 개선하지 못했던 문제다. 땅 밑에 단층이 있다고 지진이 바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힘이 응축되다가 갑자기 뒤틀리며 강력한 지진이 발생한다. 노동시장의 분절은 오래 누적돼 오다 정부의 파상공세로 나타나고 있다.

호구(虎口)는 호랑이 입이다. 범의 아가리에 들어간 위태로운 상태를 비유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바둑에서는 사방이 둘러싸여 상대가 바둑알 하나만 놓으면 죽을 모양새를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어수룩해서 이용당하기 쉬운 사람을 의미한다. 노조는 정부 공세로 깡그리 망할 정도로 만만한 집단이 아니다. 다만 연속적으로 두들겨 맞으며 반발할수록 정부 지지율이 올라간다. 이런 민주노총을 호구로 비유하면 당사자들 기분이 상할 것이지만 현실이다.

확장되고 변형된 간극

문제는 일하는 시민들 사이의 간극이다. 노동시장 상층과 하층의 균열, 노조 안 노동과 노조 밖 노동 사이의 균열은 변형되고 확장된다. 기성노조에 대한 선망과 원망, 세대로 갈라쳐 원망을 더 자극하는 MZ노조 띄우기, 원망을 혐오와 적대로 변형하고 확대하는 회계비리 조사와 ‘건폭’ 이미지 씌우기, 원망을 색깔론으로 확장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 등.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져든다. 호랑이 아가리 속에서 바둥거릴수록 이빨은 거세게 조여 온다. 바둑에서 호구를 벗어나지 못한 채 상대 손을 따라 두면 내 돌은 죽는다. 손을 빼서 다른 곳에 수를 둬야 한다. 그런데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길로 내달리며 총파업을 선언하지만, 타깃이 된 당사자나 상층만 뜨겁고 현장은 미지근하다.

조국 사태 교훈은 무엇일까. 공정을 외치다가 불공정의 상징이 된 조국을 성찰 없이 옹호한 결과가 바로 검사 대통령 탄생이다. 신념과 마비 상태를 구분하지 못하는 팬덤은 더불어민주당을 늪에 빠지게 했다. 공격진영은 쏠쏠한 재미를 봤다. 이젠 민주노총을 상대로 이를 재현한다. 공감 없는 전투는 상대를 이롭게 하며 아군을 늪에 빠뜨린다. 지금은 투쟁 선포보다 ‘회계비리’ ‘건폭’ ‘간첩’ 같은 프레임을 넘어설 ‘교감과 공감 기획’이 훨씬 중요하다.

정파들의 대응은 실패할 것

공적 집단인 민주노총은 불편해도 공론장에 서야 한다. 어떤 정파는 내년 총선에서 원내 진출, 올 연말 민주노총 선거에서 지도부 장악을 결의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반복적 총파업에 동원하다 민주노총 선거에서 각지에 조직원을 출마시킨 후 이를 발판 삼아 내년 총선으로 달려갈 것이라고 한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노동의 소망’은 사라지고 ‘정파의 욕망’만 보인다.

민주노총에 다른 정파도 있다. 한 발 떨어진 사람들은 “정파에 맞선 정파는 실패할 것”이라고 했다. ‘비공개 정파의 은밀한 과정을 통한 노선 관철’은 결사의 자유가 없던 군사독재 시대의 산물이다. 지금은 ‘공조직의 공론장을 통해 공론을 만드는’ 시대다. 이를 통해 절대다수인 무정파 조합원의 활력을 일으키는 것이 노조 민주주의다. 이를 교란한다는 점에서 특정 정파만이 아니라 정파 일반이 문제다. 최근 만난 노동계 관계자들은 “연말 민주노총 선거를 비롯해 정파적 대응은 큰 정파에 더 이익을 줄 것”이라는 일치된 예상을 했다.

민주노총이 총선을 겨냥한 정치방침을 결정하려고 4월 임시대의원대회를 연다고 한다. 민주노총 한 간부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총선 원내 진출 목표에 꽂힌 사람이야 이런 절차가 필요하겠지만 “민주노총 최고 정치방침은 무방침이다”. 노동 내부 간극을 방치하고 조합원의 다양한 성향을 무시한 채 특정 정당을 위한 행위는 위험하다. 여기는 당이 결정하면 인민은 따르는 곳이 아니다.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지만, 무엇이 새로운지 느낄 수 없다.

“노조가 뭡니까?” 평생을 민주노조에 바쳐 온 이가 새삼스럽게 물었다. 그는 20대에 전역과 함께 취업한 회사에서 어용노조를 뒤집고 민주노조를 세웠다. 그는 노조에 전력투구했고 노동자들은 “민주노조 내 사랑”을 외치며 목숨을 걸기도 했다. 어용노조를 물리친 현장은 바뀌었고, 전국에 번진 민주노조는 세상에 파란을 일으켰다. 노조는 어떤 수준, 어떤 범위에서든 세상을 바꿨다. 그런 그가 긴 시간의 회한을 담아 노조가 무엇인지 물었다.

깨진 유리창과 사회성

두 종류의 차를 거리에 뒀다. 문이 잠기지 않은 자동차는 사람들이 손대지 않지만 창이 깨진 차는 너도나도 약탈해 처참하게 부서졌다. 이것이 실험을 통해 널리 퍼진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 누군가는 민주노총을 깨진 유리창으로 만들고 있다. 너도나도 씹어 대 결국은 처참한 꼴로 내몰려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저성장 경제가 급격한 위축 경제로 돌아서 민생파탄이 심해지면 노조는 의지하고 기대할 집단이 아닌 더 강한 혐오 대상이 될 것이다.

노동자 내부 격차를 둘러싸고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책임 논쟁이다. 자본과 정권이 만든 결과인데 왜 노조에 책임을 묻냐는 주장과 노동시장 상층에서 혜택을 보는 노조에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오래된 이런 논쟁은 남 탓을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 절박한 것은 격차 해결 실천이다. 누가 해결할 것인지 증명하는 것은 논쟁보다 실천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3·1절 경축사에서도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며 가치를 공유하는 세력과 함께하겠다고 했다. 보편적 가치를 벗어난 집단을 배제하고 지배집단이 되겠다는 의지다. 그런데 거대한 시민조직인 민주노총은 왜 특수 이익집단으로 내몰릴까. ‘사회’적 권리보다 ‘사적’ 이익, ‘사회’임금보다 기업임금, ‘사회’적 대화보다 기업별교섭, ‘사회’적 직무급보다 기업별 연공급, ‘사회’세력화보다 정치세력화에 집착할수록 사회와 멀어진다. 기성노조는 집단성을 이뤘지만 사회성을 높이는 데 실패했다.

공유가치가 없다면 백만이든 천만이든 모래알이다. 지금은 ‘검찰독재’에 대한 분노가 번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 독재에 맞선 민주가 아니라 분절된 시민을 연결할 사회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돈·사람·열정을 쏟아 간극을 메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공격에 말려들어 싸움닭처럼 푸다닥거리기보다 묵직한 감동과 신뢰로 비전을 만드는 길이 여기에 있다. 찾으려 하면 ‘교감 이벤트’와 ‘공감 기획’ 등 다양한 길이 있다. 민주를 넘어 사회성을 높일 수 있냐에 따라 다가온 ‘노동의 겨울’은 ‘노동의 빙하기’로 빠져들거나 ‘노동의 봄’을 여는 서막이 될 것이다.

아유 대표 (jogj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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