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지금 <초거대 위협>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견한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 교수의 최근작이다. 그는 부채위기, 인구감소와 노령화, 붐앤드 버스트(거품이 생겼다가 사라짐을 반복하는 현상), 거대 스태그플레이션, 통화 붕괴, 세계화의 종말과 보호무역주의, AI와 사라진 일자리, 지정학적 갈등과 전쟁, 기후위기, 팬데믹 등 11가지를 앞으로 모든 것을 뒤바꿀 초거대 위협들(Megathreats)이라고 열거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위협으로 부채위기와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를 꼽으며, 그 둘이 중첩된 위기를 ‘거대 스태그플레이션 부채위기’라고 명명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간의 ‘대안정기’가 끝나고 불안정하고 암울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을 대격변기라고 묘사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루비니의 이런 인식에 대해 ‘닥터 둠’(비관론자)으로 폄하한다.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은 비관론자도 낙관론자도 아닌 현실론자(realist)라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다. 특히 디지털전환이니, 녹색전환이니, 뉴딜전환이니 하는 장밋빛 전망을 얘기하는 사람들에 비해 확실히 그렇다. 그런 전환론들은 죄다 현실의 객관적 반영이 아니라 자본의 이해와 요구를 진보의 이름으로 각색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루비니는 마르크스주의 분석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초거대 위협이 왜 지금 일어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1970년대 초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날 당시 자본의 이윤율이 낮아지고 투자가 부진했다. 이런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경기를 부양하고자 정부가 유동성 공급만 늘였기 때문에 경기는 회복되지 않고 물가만 올랐다. 그렇게 해서 스태그플레이션이 역사에 나타났다. 그러면 이윤율은 왜 낮아지고 있었는가? 마이클 A. 레보위츠 교수는 ‘마르크스 위기이론 안의 보편적인 것과 특수적인 것’(1982년)이라는 논문에서 산업전반의 노동생산성 향상에 비해 1차 산업의 노동생산성 향상이 상대적으로 낮으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되고, 이에 따라 이윤율이 저하한다고 밝혀 냈다. 이런 이윤율 저하 추세는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완화됐으나 지속됐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만들어 냈다. 그것을 돈을 풀어서 해결하려다가 2022년 이후 스태그플레이션을 만들어 내고 있다.

서론이 길었는데 노동법에 대한 인식문제를 얘기하기 위해서다.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법학)는 노동법에서 루비니나 레보위츠와 같은 진정한 학자다. 얼마 전 우리나라 노동법 문제에 관한 그의 강의를 들었다. 그는 우리나라 노동법은, 특히 집단적 노사관계에 관한 법률은 일제의 치안경찰법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단결과 파업의 자유를 보호하는 입법이 아니라 그것을 단속하는 금지입법임을 역설했다. 그에 의하면 우리나라 노동법 아래에서는 노동자에게는 사실상 파업권이 없기 때문에 단결권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현행 우리나라 노동법은 체계 자체가 악법체계라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독소조항 몇 개를 개정할 것이 아니라 현행 노동법 자체를 폐기하고 전면적으로 새로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악법이 철폐돼야 한다는 주장은 1985년 구로동맹파업에서에서 처음 터져 나왔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돌아보면서 정치투쟁을 하지 않는 노동운동은 무력했다는 성찰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다. 당시 통용되던 노동법은 전두환 신군부가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전면개악한 최고의 악법이었다. 노동쟁의는 허가제였고 제3자 개입금지로 연대도 금지돼 있었다. 그러므로 1985년 구로동맹파업에서 노동법 개정이 아니라 노동악법 철폐가 노동자의 요구가 된 것은 당연했다. 그 이전 유신시대에는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으로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유보됐고, 그 이전에는 1963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전면개악한 노동법이 적용되고 있었다. 이 법에서 복수노조는 금지되고, 공무원·교사의 노동기본권도 부정되고, 기형적 산별체계가 강제됐다. 현 노동법의 치안경찰법적 성격은 이때 확립됐다.

이 노동악법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무력화됐다. 악법은 어겨서 깨뜨려졌다. 그러자 전두환 정권은 법질서를 세우고자 부랴부랴 노동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박정희 노동법으로 되돌아간 데 불과했다. 아니 그렇게 되돌아가지도 못했다. 제3자 개입금지가 유지되고, 보수노조 금지는 더 강화됐다. 이에 노동자들은 1988년 11월13일 전태일 열사 기일에 노동악법을 철폐시키기 위해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그리고 보수정당들에게 노동악법 철페와 전면재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보수대연합으로 억압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해마다 상반기에는 임·단투를 하고 하반기에는 노동악법 철폐를 요구하며 투쟁했다. 보수정치세력들은 이 요구를 계속 묵살했다. 문민정부를 자처한 김영삼 정권 말기에 노동법 개정이 의제에 올랐으나 정권은 국민과의 약속을 깨고 크리스마스 다음날 새벽에 안기부법 개악안과 함께 노동법 개악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노동자들은 총파업으로 떨쳐나섰다. 총자본은 어쩔 수 없이 노동악법을 손봐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노동악법 철폐와는 거리가 멀었다. 상급단체 복수노조 금지, 제3자 개입금지, 정치활동 금지 같은 몇몇 독소조항을 손보는 대신 금지·단속입법의 성격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노동무임금 조항과 같이 자주적 단결권과 파업권을 제한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이런 개선에 대해 대다수 학자와 전문가들은 현행 노동법이 노동악법에서 벗어났다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를 바탕으로 노란봉투법과 같이 몇몇 독소조항만 개정하면 현행 노동법을 큰 틀에서 용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조경배 교수는 강의에서 법학자와 법전문가들의 이런 무지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의 이런 비판은 노동운동 활동가들 특히, 그 지도자들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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