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지난달 22일 통계청이 ‘2022년 출생·사망 통계’를 발표하자 다음날 여러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조선일보는 1면 머리에 ‘0.78명 쇼크 … 한국이 사라져 간다’에 이어 2·3면을 모두 털어 해설기사를 쏟아냈다. 조선일보는 3면에 ‘일할 사람 줄어 잠재성장률 OECD 꼴찌로, 노인부양비는 세계 1위로’ 치솟았다고 머리기사 제목을 달았다. 2면엔 ‘인구 대응 마지막 골든타임 … 산발적 저출산 대책 통폐합한다’며 기대 섞인 2면 머리기사 제목을 달았다. 조선일보는 윤석열 정부는 앞선 정부와 다르다는 걸 강조한다.

중앙일보는 3면에 ‘바닥 모를 저출산 … 작년 24만9천명 출생, 10년 새 반토막’이란 머리기사 제목을 달았고, 그 아래엔 “28세 정도 돼야 ‘난 어른’ … 성인 연령 인식 늦어지자 저출산도 심화”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스스로를 성인으로 인지하는 시기가 점차 늦어 (중략) 저출산 현상에도 영향을 미쳤다”며 요즘 청년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투로 접근했다.

진보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향신문은 1면에 ‘안 낳는 한국, 축소사회로’라는 1면 기사에 이어 2면에 “‘꼭 결혼해야’ 10명 중 2명뿐 … 이유 있는 저출생의 덫”이란 머리기사 제목을 달았다. 경향신문 기사엔 이런 청년들 인식이 ‘이유 있다’는 내용만 추가됐을 뿐이다.

선진국 사례는 보수언론이 더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2면에 ‘佛, 육아휴직 땐 소득 100% 보전 … 출산율 1.8명’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매일경제도 4면에 ‘佛 출산 후 결혼 정착, 스웨덴 16세까지 아동수당’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평소에 유럽 선진국 사례를 들어 비교하면 “거긴 우리와 여건이 다르다”던 언론이 이럴 땐 슬그머니 선진국에 기댄다.

정부 정책 비판도 빠지지 않았다. 경향신문은 2면에 ‘15년간 280조 퍼붓고도 … 취업·주거 등 고충 해소 못해’라는 제목의 분석기사를 내놨다. 중앙일보도 3면 기사에서 ‘280조 쏟고도 16년째 출산율 꼴찌’라는 작은 제목을 달았다. 조선일보도 ‘16년간 280조 쏟아부은 예산 시스템 개편 착수’라는 작은 제목을 달았다.

‘280조원을 쏟아부었다’는 표현은 똑같다. 이에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페이스북에 “사실이 아니다. 15년간 280조원이 아니라 연간 2.8조원 썼다”고 반박했다. 가령 올해 저출산 예산 50조원 중 실제 출산율을 높이려고 지출하는 금액은 2조8천억원인데 아동학대 예방사업도 저출산 예산에 속한다. 국방부 군인력 구조 개편 사업도 저출산 예산에 속한다. 청년인구가 주니 병력 중심 군 구조를 첨단무기 중심으로 바꾸는 사업이다. 첨단무기를 산다고 출산율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필요한 사업이다.

가임기 여성은 정부가 돈 몇 푼 준다고 애 낳지 않는다. 아이 낳고도 직장에 복귀해 예전처럼 일하는 게 당연한 사회를 만들면 낳지 말라고 해도 낳는다. 성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게 출산율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엉터리 길만 가리키는 자칭 전문가와 언론의 왜곡된 시선이 바뀌지 않으면 모두 헛짓거리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헛다리를 짚고 있다. 정부는 전 세계 유례없이 낮은 출산율에도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이유는 출산율은 2024년에 최저치를 찍은 뒤 2035년까지는 1.18까지 반등한다는 예측 때문이다. 가임기 여성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해결된다는 논리다.

더 많은 자궁이 더 많은 신생아로 이어진다는 정책 당국의 낡은 머리를 바꾸지 않는다면 90년대생, 2000년대생 여성은 더 가파른 출산율 절벽으로 답할 게 뻔하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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