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요즘 웹소설이 대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웹소설 시장은 2020년 7천415억원에서 2022년 1조850억원 규모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웹소설 IP를 기반으로 한 작품도 여럿 만들어졌다.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대표적이다. 원작의 튼튼한 스토리에 팬덤 덕까지 볼 수 있으니 제작사 입장에서는 군침이 돌지 않을 수 없다.

웹소설에 통용되는 몇 가지 문법이 있다. 일단 전개가 빨라야 한다. 일반적인 웹소설 구성을 보면, 기승전결을 갖춘 짧은 에피소드가 여럿 이어지고 이 에피소드들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큰 이야기가 있다. 특히 초기 에피소드에서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이야기를 계속 끌고 나갈 동력을 얻는 게 중요하다. 갈수록 시장은 커지는데 진입장벽은 낮으니 작가들끼리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작품 초기에 인기를 얻지 못하면 반등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웹소설은 ‘고구마’는 지양하고 ‘사이다’를 지향한다. 당장의 카타르시스를 원하는 독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주인공은 성장형 캐릭터가 아니라 완성형 캐릭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인공이 성장하길 기다리다간 독자가 다 떠난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환생이라는 장치를 통해 주인공에게 미래를 읽어 내는 압도적인 능력을 부여했다. 그 덕에 주인공은 승계 경쟁에서 매번 승리할 수 있었다.

‘사이다’를 선사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악이 필요하다. 상대가 악하면 악할수록 그를 벌할 때 더 짜릿한 법이다. 조폭, 마약, 학교 폭력, 갑질, 사이비 종교 등 자극적인 소재는 필수다. 그리고 악의 원인은 상당 부분 개인에게 있어야 한다. 악의 원인을 구조적으로 들여다보다간 빠른 전개도, ‘사이다’도 불가능하다. 법제도나 문화·관습 등은 당장 손에 잡히는 게 아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격언만큼 웹소설 세계를 잘 대변해 주는 말도 없다. 압도적인 주인공 신화는 민주적·법적 절차와는 상극이다.

웹소설 이야기를 길게 늘여 놓은 이유가 있다. 최근 들어 극심해진 윤석열 정부의 ‘노조 때리기’와 맞닿아서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을 기점으로 정부의 ‘노조때리기’가 본격화했다. 올해 초부터 공안 정국을 만들며 노조 사무실 압수수색에 들어갔고, 회계 투명성 강화를 명분으로 노조 돈줄을 옥죄려 한다. ‘건폭(건설폭력)’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노조를 폭력집단으로 낙인찍고, 기성 노조와 MZ 노조, 조합원과 비조합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편 가르려 하고 있다. 이는 자극적인 소재를 가져와 노조를 악마화하고 법으로 노조를 심판해 국민에게 ‘사이다’를 주겠다는 의도다.

전개 속도도 상당히 빠르다. 검찰·경찰·국정원·국토교통부·고용노동부·공정거래위원회 등을 동원한 전방위적 압박과 동시다발적인 압수수색, 명분 쌓기용 각종 위원회와 자문단 등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짧은 에피소드가 무궁무진한 것이다. 정부의 ‘노조 때리기’에 반발한 노조는 총파업을 결의했다. ‘노조 때리기’ 이후 지지율 상승을 맛본 정부는 내년 총선을 바라보고 강대강 대치 국면을 계속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여러 에피소드를 하나로 엮을 큰 이야기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완성형 캐릭터가 아니다. 동시에 노조는 심판해야 할 악이 아니다. 현재 전체 노동자의 60%가량은 임금체계조차 없는 사업장에서 일한다. 대부분 영세하고 노조가 없는 곳이다. 이들에게 호봉제니 직무급제니 하는 논쟁은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다. 게다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1인 자영업자처럼 기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 노동자와 개인사업자 중간에 위치한 자 등이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을 우리 사회의 법·제도와 사회안전망 속에 어떻게 편입시킬지가 노동개혁의 핵심이 돼야 한다. 이는 모든 사회 주체가 달라붙어 치열하게 논의하고 합의해야 할 문제다. 노동개혁은 선악을 구분 짓고 일방이 밀어붙여서 될 게 아니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 ‘사이다’의 가장 큰 문제는 현상을 단순화시키는 데 있다. 소설이나 드라마 등 창작물이야 허구고 재미를 위해 그럴 수 있다고 해도, 현실에서 그러는 건 곤란하다.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을 강경 진압하면서 화물노동자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산재 위험, 노동자성 등은 나 몰라라 했다. 건설노조를 폭력집단으로 매도하면서 건설현장의 불법 하도급, 건설노동자의 고용불안, 노사 모두 업계 관행으로 여겨 온 월례비, 그 원인이 된 빨리빨리 공사 등은 모른 척했다. 노조만 때려잡으면 복잡한 문제가 모두 해결될 거라고 현실을 호도한 것이다.

정치를, 노정관계를 스낵처럼 소비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행태가 참 안타깝다. 계속해서 눈앞의 단맛만 취하다가는 금방 탈이 나기 마련이다. 진정 노동개혁을 하고자 한다면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에서 허덕이고 있는 노동자의 목소리부터 듣길 바란다. 노조를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존중하길 바란다. ‘사이다’가 아니라 ‘고구마’를 찾을 때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ilecd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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