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 년을 넘어가면서 협상으로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는 25만명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평화로운 분쟁 해결을 촉구하는 내용의 ‘평화를 위한 선언’(the Manifesto for Peace)에 서명했다. 독일의 저명한 노사관계 학자인 볼프강 슈트렉(Wolfgang Streeck)도 선언 발기인 69명 중 한 명으로 ‘평화를 위한 선언’ 서명에 참여했다. 이와 관련해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Frankfruter Rundschau)가 볼프강 슈트렉과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한다.

- ‘평화를 위한 선언’에 서명했는데, 러시아가 협상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보는가.
“잘 모르겠다. 그런데 2021년 가을, 러시아는 미국에 우크라이나 분쟁에 관한 자국의 요구사항을 협상하자고 여러 차례 요청했다. 물론 미국은 거부했다. 심지어 전쟁 발발 후에도 이스라엘 수상 등 타국이 중재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직접 협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이 우크라이나 편을 들면서 무산됐다.”

- 러시아는 이미 점령한 지역을 자기 영토로 인정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요구는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을 텐데 타협이 가능하다고 보나.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는 이라면 누구나 이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다. 대체로 이미 국제적으로 합의된 민스크 협정들(the Minsk agreements)과 비슷하게 될 것이다. 크리미아반도는 러시아에 속하게 되고,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어 사용 지역은 국제사회의 감시하에 고도의 자치권과 특별 지위를 갖게 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중립국으로 남게 된다. 다시 말해 루마니아나 체코공화국과 달리 자국 영토에 미군의 미사일 발사 기지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전쟁 당사자들 사이에 화해할 가능성은 없어지고 있다.”

- 슐츠 독일 수상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푸틴이 거짓말한다고 느낀다. 지금까지 협상이 불가능했다면, 푸틴이 아니라면 누구 책임인가?
“메르켈 전 독일 수상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전쟁으로 치닫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유럽적인 방안을 추구했다. 그것은 미국을 빼는 방식을 뜻한다. 이는 2003년 독일 수상과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슈뢰더와 시라크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제안을 거부한 것과 비슷했다. 전쟁은 양심 고백이나 철학 세미나가 아니다. 누가 거짓말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죽고 누가 사느냐의 문제다. 전쟁이 일어나면 진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이야기(narrative)’만 난무한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누구나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전쟁은 피해야 하고 또 빨리 끝내야 한다. 전쟁은 생명에만 해로운 게 아니라, 도덕에도 해롭다.”

- 많은 이들이 나쁜 평화협상은 러시아의 영토 야욕을 키울 수 있다고 느낀다.
“우선 모든 평화협상(peace deal)은 좋다고 말하고 싶다. 살육을 끝내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이 모스크바에서 750킬로미터 떨어진 우크라이나 수도를 점령할 것이라고 진짜로 겁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소련 종말 이후 이뤄진 미국과 러시아의 협상에서 당시 고르바초프와 옐친과 푸틴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전쟁 개시의 이유(casus belli)가 될 것임을 거듭 분명하게 밝혔다. 체코슬로바키아나 루마니아, 그리고 발트해 국가도 러시아를 부담스러워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장은 너무 나간 것으로 보는 것이다.”

- 우크라이나가 핵강국을 패퇴시킬 수 없다지만,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은 그것이 가능함을 보여주지 않나.
“우스꽝스러운 비교로 잘못된 생각이다. 미국은 거대한 섬나라라서 재래식 무기로 공격할 수 없다. 미국은 지상전에서 패배하더라도 잃을 것은 자기 영토가 아니라 다른 나라 땅이다. 미국은 전쟁에서 진 다음에도 자기 대륙으로 내뺄 수 있다. 누구도 미군을 추적할 수 없다. 미국이 잃는 것은 전쟁이지, 나라나 국가가 아니다. 러시아는 다르다. 우크라이나나 독일 외무장관이 상상하는 방식으로 러시아가 진다면 푸틴은 전범으로 국제사법재판정에 서야 한다. 폴란드나 독일 등 서방연합군과 함께 우크라이나군이 모스크바를 침공할 게 명백하다면, 러시아는 핵병기에 의존할 것이다.”

- 미국은 일 년 전에 러시아의 침공을 이야기했다. 전쟁에서 미국 에너지산업은 혜택을 가져간다. 미국 언론인 세이머 허시(Seymour Hersh)는 미국이 러시아-독일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을 폭파시켰다고 폭로했다. 미국의 역할을 어떻게 보나?
“(나토가 동진을 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약속에 따라 소련군이 동독에서 물러난 일은 존 홉킨스 대학교수 M. E. 사로트의 책인) <1인치라도>(Not One Inch)에 나와 있듯이 30년도 넘은 오래된 이야기다. 세계 최대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의 역할은 처음부터 중요했다. 따라서 전쟁 종식을 위한 러시아와의 협상도 결국 미국 말고는 할 나라가 없다. 독일과 프랑스와 유럽연합 같은 ‘우리’는 협상할 게 없다. 우리가 나섰던 2021년 가을 협상과 이스라엘 수상이 나섰던 2022년 협상을 보라. 이와는 별개로 바이든 대통령의 지령에 따라 가스관을 폭파시킨 게 미국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이들이 아직도 있는지 알고 싶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