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세상은 발전한다고 배웠다는데 틀렸다. 사물은 변화·발전하고, 그래서 이 사람 사는 세상도 결국은 진보할 것이라던 철학교과서는 엉터리였다. 날마다 퇴보하는 세상이 끔찍하다.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 나아가기는커녕 제자리걸음도 아니고 이건 뭐 ‘뒷걸음질’이다. 권력은 기업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자본을 위해 노골적이다. 노동자의 자유로 보자면, 오늘은 틀렸다. 노동자의 권리로 읽자면, 분명히 이 세상은 엉터리다. 혁명도 전쟁도 선거도 배신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권력으로부터 더는 인민의 자유니, 노동자의 자유니 하는 말조차 듣기 어렵다. 헌법전에나 새겨진 낡아빠진 말이다. 권력은 자본의 자유를 위해서 오늘도 폭주하고 있다.

정부가 올해 노동단체 지원사업을 하면서 노조 회계자료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노동조합’으로 한정했던 지원 대상을 ‘근로자로 구성된 협의체’로 개편하고 지원사업 예산(44억원)의 절반은 새로운 단체에 몰아준다는 계획이라는데, 정부가 ‘돈’으로 노동자를 길들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매일노동뉴스 2023년 2월24일자 2면 기사 참조). 고용노동부는 이달 초 노조 회계가 의심스럽다며 1천명 이상 노조(총연맹과 산별연맹 포함) 344곳을 대상으로 노조 회계장부 보존·비치 의무 자율점검 결과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는데, 노조 회계자료를 정부에 내지 않은 단체는 선정에서 배제하고, “지원사업 예산의 50%인 22억원은 신규 참여 기관에 배정해 근로자협의체, MZ노조 등 새로운 노동단체가 참여하도록 할 계획”할 방침이라고 하니 이렇게 비판하는 것이다. 조합원 1천명 이상인 노조에 일괄적으로 회계자료 제출을 요구해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모두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렇게 회계자료 제출하는 노조에만 지원금을 주겠다고 방침을 세우고 있으니 이 나라에서 노조는 회계자료 제출 등 권력의 지시하는 대로 순순히 따르거나 정부 지원금을 포기하거나 선택의 기로에 섰다. 예산편성된 정부 지원금을 권력의 입맛에 따라 말 잘 듣는 노동단체에 나눠줄 수 있다고 여기고서 오늘 윤석열 정부는 이 나라 노조들을 몰아 세우는 것이다. 노골적이고 직접적이라서 낯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고용노동부가 이렇게 회계자료 제출 요구를 하고 정부 지원금으로 무기로 이 나라 노조들을 협박하고 있는 것은 연일 계속되고 있는 윤 대통령의 ‘노조 때리기’에 발맞춘 것이라고 보인다.

2. 지난 22일 매일노동뉴스는 윤 대통령이 “노조 기득권은 젊은 사람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만드는 약탈행위”라면서 “기업이나 산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노조의 회계 투명성이 뒷받침되지 않고 부패하게 되면 납품 시스템 등 기업 생태계가 왜곡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출처와 용처를 파악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조 회계장부를 기업의 원하청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적 문제로 부각시키고 “우리나라에서는 노조 회비에 상당 금액 세액공제를 해 사실상 노조 공영자금을 국민 세금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에 신속한 대책을 주문해서 노조비에 대한 세액공제 중단까지 시사했다. 소득세법 시행령에 따르면 관련 법령에 따라 설립된 노조에 가입한 사람이 낸 회비는 ‘공익성을 고려한 일반기부금’에 해당한다. 조합원인 노동자가 낸 노조비 가운데 지난해까지는 20%, 올해는 15%의 세액공제를 받는다. 국회의결을 통하지 않고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이니 이젠 조합비 세액공제까지 무기로 삼겠다는 모양이다. 이에 대해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조 회계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노조에 대해서는 노조비 세액공제도 원점에서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계자료를 제출하는 말 잘 듣는 노조 조합원에게는 조합비 세액공제를 해주고 그렇지 않은 노조의 조합원에게는 세액공제를 해주지 않는 법령이라니 점점 이상해진다. 이 나라에서 법도, 권력도 이상해지고 있는데 살펴보자.

3. “노조 기득권은 젊은 사람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만드는 약탈행위”라니. 여기서 노조 기득권은 무얼 말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엇을 두고 이런 개념을 사용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특정 노조의 문제를 지적해서 한 말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 막연히 노조 기득권이라고 하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 나라 노조 일반의 문제로서 지적하는 개념일 텐데 노조 활동을 통해 확보하는 조합원들의 ‘노동자권리’가 문제라는 것인가. 그것이 어째서 젊은 사람의 미래 희망을 포기하도록 한다는 것인지 나는 무슨 말인지 도대체가 모르겠다. 혹시 노조라는 것이 노동시장에서 노동자와 사용자 간 거래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는 걸 두고서 하는 말일 수 있다는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감명 깊게 읽었다는 도서에 노동조합이 자유로운 노동시장의 저해해서 경기 순환 등 기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자의 저서목록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 주장을 확신하고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노조 기득권 운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그것은 노조 조직력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인데, 이 나라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 대통령이 이런 주장에 사로 잡혀 오늘 노조 때리기에 몰두하고 있다고는 믿고 싶은데 나는 점점 심각해진다. “젊은 사람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만드는 약탈행위”라니 전형적으로 노동시장에서 공급을 제한하려는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이 드니 어째야 한단 말인가. 임금 등 노동자권리 수준이 높지 않고, 시장 변화에 따라 그 권리 수준을 낮출 수 있도록 경직적이지 않아야 하는데, 노동조합은 노동자권리 수준을 높이고 사용자 기업이 쉽게 낮추지 못하도록 하니, 노동조합이 보다 낮은 수준으로 노동자를 고용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노조 기득권은 젊은 사람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만드는 약탈행위”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계속해서 “기업이나 산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노조의 회계 투명성이 뒷받침되지 않고 부패하게 되면 납품 시스템 등 기업 생태계가 왜곡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출처와 용처를 파악해야 한다”고 지시했다는 말을 보자.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이 기업이나 산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대통령은 믿고 있다. 분명히 확신에 차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20여년을 이 나라에서 노동자, 노동조합을 대리해온 자로서 나는 그 말을 믿지 못하겠다.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는커녕 조합원의 권리조차 제대로 확보하는 노조도 많지 않다. 노동부는 “노조 조직률이 2021년 기준 전체 노동자의 14.2%로 낮고 대기업 중심으로 조직돼 있어 다수의 미조직 노동자 이해를 대변하는 기관들은 참여가 어려웠다”며 정부 지원금 중 “지원사업 예산의 50%인 22억원은 신규 참여 기관에 배정해 근로자협의체, MZ노조 등 새로운 노동단체가 참여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낮은 조직률에 노동자 이해를 대변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노동시장 장악력도 별 볼 일 없다. 기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정도의 노동조합이라면 구조조정 등 기업의 운명을 사용자 자본과 공동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산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정도의 노동조합이라면 정부의 산업정책 결정에 참여해서 그 결정을 좌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전혀 아니다. 그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와 관련된 논의도, 요구도 찾기 어렵다. 공동결정하는 유럽 등 노동 선진국의 노동조합을 두고서 하는 말이라면 몰라도 전혀 그렇지 못한 이 나라 노조들을 두고서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리고서 “노조의 회계투명성이 뒷받침되지 않고 부패하게 되면 납품 시스템 등 기업 생태계가 왜곡”된다며 “철저하게 출처와 용처를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은 대통령은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나라 노조가 엄청난 것처럼 말했던 것은 납품 시스템 등 기업 생태계를 왜곡시킬 수 있는 노조 활동을 막고자였다. 그래서 노조의 회계투명성을 강조하면서 노조 회계의 출처와 용처를 파악해야 하도록 지시한 것이겠다. 기업의 원하청 거래를 원활히 하는데 노조 활동이 방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4. 조합비 횡령 등 부패한 노조 활동이 있다면 수사든 뭐든 법대로 하면 된다. 막연히 이 나라 노조가 부패했다고 매도하는 것은 대통령, 고용노동부 장관 등 권력이 할 일이 아니다. 위법, 부당하게 원하청 거래를 막는 노조가 있다면 그 활동이 정당한지를 따져 그 책임을 물으면 될 일이다. 온 나라 노조들이 그런 것처럼 비난할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자주적인”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33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노동자가 “자주적으로” 활동해야 노동조합이라고 정의했다(2조). 노동조합은 사용자 자본만이 아니라 권력으로부터도 자주적이어야 한다. 오늘 이 나라에서 회계자료 제출, 정부 지원금 등 일련의 행태를 보면 권력이 말하는 노조의 정상화란 말 잘 듣는 노조 만들기로 보인다. 헌법과 법이 선언한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볼 일이다. 세상의 변화·발전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희망을 헌법전에 새겨놓으면서 “자주적인”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을 포함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