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나는 정보공개(open.go.kr)를 통해 국고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노동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에 청구하는 작업을 간헐적으로 하고 있다. 청구 대상에는 노조에 지원된 국고 내역도 포함된다.

이명박 정권 때 일이다. 지금은 국민의힘 소속 핵심 정치인이지만, 당시 한국노총 임원으로 있던 이가 국고를 횡령했다는 소문을 듣게 됐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 노동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더니, 담당 공무원은 내 개인정보를 한국노총 내부인에게 알려 줘 나를 곤란한 상황으로 밀어 넣었다. 이런 잘못된 관행이 지금은 근절됐을까.

지난달 청구한 정보공개 답변서를 보니, 최근 10년 동안 일하다 죽거나 다친 노동자들을 지원하라고 만들어진 산업재해보상보험에서 노동부 공무원들이 출장비 명목으로 타 간 돈이 100억원을 넘는다. 출장비 세부 내역을 달라면 이런저런 이유로 ‘쉴드’를 쳐서 일단 통화로 들어 보니 근로감독관들을 위한 출장비라 했다.

지금 윤석열 정권하에서 회계 장부를 공개하라고 노조를 방문해 압박하는 공무원들의 상당수가 근로감독관이다. 산재보험에서 빼낸 출장비로 공장에 가서 ‘근무 조건과 환경의 감독’(inspection on working conditions and environment)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지는 않고, 노조활동에 국가가 부당하게 개입함으로써 헌법 정신을 거스르고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을 위반하는 게 근로감독관의 일상이 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부 근로감독정책단 관계자가 하는 일이 “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확대하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1주 최대 노동시간을 64시간으로 늘리고 11시간 연속휴식 제도는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산재보험에서 출장비를 빼 쓰는 것도 모자라, 이젠 노동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자본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의 근무시간을 늘리려는 한국적 근로감독의 실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산재보험기금은 사용자가 전액 부담한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사용자가 전액 부담한 돈이 노동부 공무원과 근로감독관의 출장비로 나간다. 그리고 그 돈으로 국가와 사용자의 앞잡이가 돼 노조를 찾아가 압박하는 게 “노동운동가” 출신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관리하의 근로감독관이 하는 일이 되고 있다.

돈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짚어 보자. 이정식 장관은 이달 8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우리나라 노사관계 시스템이나 정치, 문화, 권력구조 등을 봤을 때 실질적 의미에서의 사회적 타협은 쉽지 않다”며 “현재의 사회적 대화 방식에 근본적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다음에 나온 답변을 보면 그의 의도가 어려움에 부딪힌 사회적 대화의 해법을 찾는 데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이 장관은 “역대 정부를 보면 노사 당사자가 직접 참여해서 하는 방식, 전문가와 노사 당사자를 포함하는 방식, 전문가가 먼저 논의하고 그 다음에 노사 당사자 의견을 듣는 방식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고 말했다. 여러 방식을 이야기했지만, 그의 진짜 의도는 마지막 방식을 합리화하는 데 맞춰져 있다. “전문가가 먼저 논의하고 그 다음에 노사 당사자의 의견을 듣겠다”는 것이다.

그의 발언에는 노동부의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같은 관변기구에 참여하는 어용 지식인들을 사회적 대화의 당사자로 격상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내가 보기에 한국에서 사회적 대화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교수와 변호사 같은 이른바 ‘공익’들의 사회적 대화 기구 참여가 과잉돼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문제가 ‘공익’들의 역할이 정부를 대체하는 것이었다면, 윤석열 정권 들어 두드러진 문제는 ‘공익’들의 역할이 노동조합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는 점이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들 '공익'들에게 “전문가”라는 미명하에 국고지원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십 년치를 합치면 억대가 넘을 이들이 수두룩할 것인데, 이 돈이 합당한 용역비인지, 아니면 곡학아세와 부역의 대가인지를 따져 봐야 한다.

윤석열 정권은 “국고지원 받는 노조의 회계 투명성” 운운하기 전에, 노동부가 지난 수십년 동안 이들 “전문가”에게 각종 명목으로 지급한 국고지원 내역부터 투명하게 밝히는 게 순리일 것이다.

이정식 장관은 22일 ‘노동계 원로 간담회’를 열고 “이제 시대가 바뀌어 ‘너 죽고 나 살자’식 관계로는 우리 모두 살아남을 수 없다”며 “노조도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노조가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는 데는 나도 동의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정식 장관이 ‘너 죽고 나 살자’는 집단이 노조라 여기고, 그래서 노조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사실 ‘너 죽고 나 살자’는 집단의 정점에는 노조가 아니라 이재용·정의선·최태원·구광모 같은 독점자본가들이 있다. 이들과 동맹관계에 있는 관료집단도 예외는 아니다.

대장동 사건에서 우리가 목도하듯이 판사와 검사와 변호사로 구성된 법조계에서 진동하는 썩은 내도 장난이 아니다. 대학·언론·종교 집단은 또 어떤가. 무엇보다 ‘너 죽고 나 살자’는 무리는 이 장관이 근무하는 노동부 안에도 수두룩하다.

대한민국이라는 체제 전체가 혁신이 필요하고 그 지배층들이 ‘너 죽고 나 살자’는 행태를 보이는데, 그 체제의 일부에 불과한 노조만 손가락질하는 이정식 장관의 저의는 무엇일까.

1% 천재의 경영 자질을 타고 났다는 독점 재벌가의 자기 혁신, 20대 때 고시를 통과하면 평생 능력이 이미 검증됐다는 관료집단의 자기 혁신, 부동시를 이유로 병역을 기피했으면서도 전쟁 도발 발언을 일삼는 대통령의 자기 혁신, ‘법의 지배’를 ‘법률가의 지배’로 타락시킨 법조계의 자기 혁신, ‘헌정주의’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검찰의 자기 혁신, ‘기레기’로 전락한 언론의 자기 혁신, ‘매판지식인 양성소’로 전락한 대학의 자기 혁신, 돈과 탐욕에 찌든 종교의 자기 혁신에는 눈감은 이정식 장관의 “노조 혁신” 발언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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