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연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미국에서 공부 중인 처남이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는,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어깨를 치고 지나가거나 문을 눈앞에서 닫아 버리는 등 의외의 부분에서 무례하다면서 “미국이었으면 누가 총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 서로 무례할 수가 없다. 그게 ‘45구경의 정의’”라는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여기에 나는 멕시코는 살인율이 1위이고 한국이 자살률 1위인데 멕시코 사람들은 한국에서 사장이 괴롭히면 노동자가 자살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인터넷상 농담을 돌려 줬다. 그리고 처남과 나는 둘 다 이것이 농담인 척하는 일말의 진실임을 잘 알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연간 자살자는 1만2천~1만3천명에 달했는데, 지난 5년간(2017~2021) 산업재해로 인정된 사례는 473명에 불과했다. 그 누구도 일 때문에 자살한 사람이 전부 산재로 인정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올해 초 전국과학기술노조는 2022년부터 실내온도를 ‘평균 17도 이하’로 유지하라는 정부 난방규제가 근로자의 건강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지난주 산업통상자원부는 답변서에서 “겨울철에는 긴소매 내의 및 긴 속바지를 갖춰 입을 때 실내 최적 온도는 16.1도이고, 실내온도를 17도로 규제하는 데는 내의 착용을 권장하는 취지도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내복을 입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럽지도 않고 입더라도 한기는 그대로 느껴질 텐데, 저들에게는 노동자가 위아래 내복을 입고 추위를 버티며 일하는 것이 당연한 생각인가 싶어 아찔함마저 느껴졌다.

지난 25일에는 민주일반노조의 초청으로 원어민 강사들 약 20명이 모인 간담회를 참관했다. 금발과 벽안의 강사들은 임금·퇴직금 체불이나 연차 사용 문제는 물론이고, 몸이 아프다고 하자 원장으로부터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검사를 받아 보라는 말을 들은 경험도 있었다. “아이리시(Irish) 사람은 음주벽 때문에 사양한다”는 구인광고를 본 경험을 말해 주면서 “한국 사람들의 음주량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이리시 위스키는 그토록 잘 팔리면서 영어강사로는 아일랜드 출신을 사양하는 모순을 생각하면 들어도 싼 핀잔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사회는 어딘가 심각하게 어긋나고 잘못돼 있다. 노동관계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도 어떤 법치주의에 관한 인식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 문제인가 싶다.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라”는 공자님 말씀과 온갖 ‘예’에 관한 관념을 국가철학으로 숭상하며 600년 이상을 살아 왔던 사회가 아니었나? 전 세계에서 모욕이 실제로 형사처벌되고 동시에 사실적시 명예훼손 또한 별도로 처벌되는 거의 유일한 나라인데도 일상에서는 최소한의 예의를 기대하기가 왜 이다지도 어려운가?

원어민 강사 간담회를 다녀오고 본 저녁 뉴스에는 “제주도에서 온 돼지새끼” “빨갱이 새끼”가 도배돼 있었다. 4·3항쟁 때 서북청년단의 이야기인가 싶었던 말들은 공직후보자의 아들이 불과 몇 년 전 고교생일 때 동급생에게 했다는 욕설이었다. 단 십여 글자 안에 신체와 고향과 근현대사와 이념지형을 넘나드는 욕설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빠는 아는 사람이 많은데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는 우월의식이 뒷받침돼 있었다. 우월의식에서 비롯되는 예의에 대한 망각과 괴롭힘의 고의성, 익명 댓글에서나 보던 ‘나는 너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고 가진 것이 많고 영향력이 있으므로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이러한 우월의식은 학교폭력과 군대 내 가혹행위를 거쳐 노동에 대한 무시로 이어진다. 개별적으로는 직장내 괴롭힘과 집단적으로는 부당노동행위를 그대로 관통하는 악의 축이나 다름없다. 괴롭힘 가해자로 신고당한 상급자가 피해자들의 복무감사를 요청하는 오만함도 여기서 비롯된다.

노동조합에 대한 무시에는 노동자의 존엄성에 대한 무시, ‘내가 예의 없어도 너네들이 뭘 어쩌겠냐’는 미필적 가해의식이 깔려 있다. 민주노총에서 굳이 ‘주’ 자를 빼고 ‘민노총’이라고 부르면서 마치 대단한 글자 절약이라도 하는 듯한 서술방식 역시 노동에 관한 무시가 전제돼 있기에, 관습적이라도 ‘민노총’이라고 쓰는 사람을 나는 의심한다. 이러한 무시가 누적되면, 노동조합 지회장이 적정인력을 요구하며 37일간 단식할 동안 단 한 차례도 만나 보지 않는 서울 강북구청장의 태도가 도출된다. 조합원과 함께 존엄하기 위해 잘 싸우는 것이 노동조합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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