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영화 <다음 소희>가 개봉했다. LG유플러스 전주 콜센터(LB휴넷)에서 일하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홍수연양이 이승을 버린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2017년 1~3월치 내 취재수첩엔 분노에 찬 메모가 가득하다.

수연양의 죽음을 조사한 전북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의 강문식 집행위원장은 “학교와 교육청, 교육부, 고용노동부 어느 한 곳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수연양은 2017년 1월23일 숨졌는데, 이후 한 달 동안 학교와 전북도교육청은 실족사로 추정한다며 경찰 조사 뒤 대응하겠다고만 했다. 지역 청소년단체는 유족과 친구들을 만나 수연양이 고객센터에서 소위 ‘욕받이 부서’(SAVE, 해지방어)에서 일했고 ‘콜수를 못 채워 늦게 퇴근했다’고 얘기했다.

전북은 2010~2022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진보교육감’ 김승환 교수가 내리 3선을 한 곳이다. 내게는 김승환 교수와 얽힌 특이한 기억이 하나 있다.

2010년 5월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이던 나는 전주에서 비정규직 전략조직화 회의를 열었다. 회의 뒤 참석자들과 늦은 저녁을 먹는데 ‘진보교육감’ 후보가 인사차 왔다. 5분 뒤 또 다른 ‘진보교육감’ 후보라며 김승환 교수가 왔다. 한 지역에 2명의 진보교육감 후보라니.

먼저 온 후보는 더불어민주당이 미는 후보였는데 민주노총 내 특정 정파가 그를 초대했다. 2010년 6월2일 선거 결과 김승환 후보는 2위와 불과 2281표 차이로 신승했다. 호남에서 민주당이 후원하는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김 교수야말로 진정한 진보교육감이었다. 그런 교육감이 8년째 재임 중인 전북에서 수연양 사건이 일어났다. 취재하면서 나는 진보교육감 할애비가 당선돼도 교육 행정은 바뀌지 않음을 실감했다. 전북도교육청은 수연양이 숨진 지 두 달이 지난 3월23일에서야 뒤늦게 사과와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했다.

특성화고에서 애완동물을 전공하던 수연양이 어떻게 통신사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는지, 그것도 해지방어 부서에서 잔뜩 화가 난 고객을 응대하는 극한 업무를 떠맡도록 교육당국은 뭘 했는지 답답했다.

수연양이 맺은 실습협약서와 근로계약서엔 월급이 서로 달랐다. 학교와 수연양, 업체 3자가 2016년 9월2일 체결한 ‘실습협약서’엔 하루 7시간에 월 160만5천원을 지급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홍양과 업체가 9월8일 체결한 ‘근로계약서’엔 하루 8시간이 기본이고, 첫 달엔 113만5천원, 다음달엔 123만5천원을 준다고 돼 있다. 조사에 임했던 전북청소년인권네트워크는 “불과 6일 만에 근로조건을 하락시켰다. 업체가 학교와 학생을 기망했다”고 했다.

강문식 집행위원장은 “학교도, 교육청도, 교육부도 현장실습생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중도복귀자는 몇 명이나 되는지 파악하는 프로세스가 아예 없음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평생 특성화고에서 현장실습 문제를 다루다 퇴직한 하인호 선생은 “현장실습은 교육의 연장으로 인식해야 하고, 현장실습을 정상화하지 못하면 업체에 파견하는 현장실습은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박정희 정권이 1963년에 도입한 현장실습제도는 출발부터가 불순했다. 김영삼 정부는 1993년 신경제 5개년 계획에 따라 3D업종에 노동력 공급을 위한 도구로 이 제도를 더 악용했다. 10대 학생을 노동력 공급의 불쏘시개 정도로 여긴 국가권력이 비극의 원흉이다.

“수연이에서 멈출 줄 알았어요. 그런데 민호, 정운이 계속 죽었잖아요. 이 아이들이 ‘쓰고 버려도 되는’ 소모품은 아니잖아요”(한겨레 2023년 2월21일 2면)라며 흐느끼는 수연양 아버지의 맺힌 한을 누가 풀어 줄까.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