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범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얼마 전 한 경제신문에서 내가 소속된 법률원에 대한 기사를 냈다. “민노총”이 “변호사와 노무사 등을 대거 영입”해, 한때 존폐 위기에 놓였던 법률원이 현재 “90명까지 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모두 “MZ세대 유입과 함께” 찾아온 변화라고 한다. “과거 투쟁과 파업 중심이던 노조가 실리와 정당성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MZ세대의 요구에 맞춰 바뀌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사실 경제신문이 노동계 소식을 보도하면서 최소한의 팩트체크도 하지 않는 것은 오랜 전통이었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부터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들 경제지가 민주노조운동에 대해 무언가 쓸 때 이제 정말 습관적으로 ‘기승전MZ’ 프레임에 의지한다는 것이었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MZ세대’는 투쟁과 무리한 요구를 싫어하며, 실용주의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리고 그들과 도무지 융화될 수 없는 민주노조운동은, 비합리적이고 무조건 투쟁만 하려들며 구시대적이다. 이런 구도는 결국 세대 차이로 도태되고 싶지 않으면 ‘민노총’도 빨리 정신을 차리라는 친절한 훈계로 마무리되기 일쑤다.

물론 80년대와 90년대 청년기를 보낸 노동자들과 2010년대와 2020년대 청년노동자들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세대 차이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가 아니다. 세대는 계급, 성별과 성정체성 등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의 삶의 경험을 다르게 구성하게 만드는 한 요소일 뿐이다. 20대에 군부독재와 광주 학살을 경험한 사람과, 한때 ‘민주화 투사’를 자임하던 이들이 안착시킨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자란 사람은 정치적 관점이 동일할 수 없다. 호황을 경험하고 그 시기에 자기 삶을 지킬 최소한의 경제적 안전장치를 마련한 사람과, 청소년 시기부터 단 한 번도 호황이 무엇인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의 삶의 우선순위도 같을 수 없다. 하루하루 배불리 먹고 골목에서 뛰어놀면 즐겁던 시대와, 성적 경쟁과 인터넷 세계에서의 소비 과시 경쟁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시대의 청소년들의 ‘감성’은 같을 수 없다. 세대 차이란 결국 정치경제적 환경, 사회구조의 역사적 변화를 반영한다.

그러나 세대 차이를 넘어 공유되는 삶의 경험들도 많다. 난방비 폭탄, 기름값 인상, 안정적 일자리 감소, 임금 대비 물가인상률 격차 증대, 더 많이 내고 더 적게 받는 연금 개악, 노동시간을 늘리고 연장근로수당은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악, 기후위기 등 이슈들은 피부에 와닿는 차이는 있어도 세대 불문 모든 노동자들을 괴롭힌다. 역설적으로 바로 이런 공통점이야말로 보수언론이나 재계, 윤석열 정부가 ‘MZ세대’ ‘MZ노조’와 민주노조운동 사이에 크나큰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이유다. 그들은 차이를 과장함으로써 세대를 넘은 노동자들이 함께 강력한 투쟁을 벌이는 사태를 차단하고 싶어한다.

얼마 전 중앙노동위원회는 2022년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부당해고와 전보 등 관련 구제신청 건수가 대폭 늘었다며 이런 사건들은 “새로운 노동 관행을 주도하는 MZ세대가 영향을 끼친 결과”라고 보도자료를 냈다. 그러나 이는 하나만 보고 둘은 못 보는 해석이기도 하다. 그 통계는 MZ세대에게도 직장은 천국이 아닌 고통의 공간이며 그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작업장의 지배질서에 도전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지금 민주노조운동이 마주한 물음은 우리의 장점, 곧 조직하고 투쟁하는 것이 MZ노동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그들 자신의 경험으로 입증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풀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유형화는 언제나 조심스럽기 마련이지만) MZ세대는 대체로 어떤 조직이 자신을 책임져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경제위기는, 그들에게 믿을 것은 나 자신의 경쟁력뿐이라고 일생 내내 각인시켜 왔다. 만일 민주노조운동이 그들의 이런 정서와 삶의 경험에 더 깊이 공감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그들의 입장에서 출발해 투쟁을 건설할 수 있다면, 그들이 직장에서 곤경에 처할 때 문을 두드리는 것은 더 이상 법률가 사무실이 아닌 노동조합 사무실이 될 것이다. 노조야말로 본래부터 가장 “이기적이고 실용적인” 개인들의 이익을 가장 효과적으로, 단결투쟁으로 쟁취하는 곳 아니었던가.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