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대진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2000년대 초중반 돌봄의 사회화가 진행됐다. 신자유주의 경쟁 속에 개인은 돌봄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 보육서비스제도가 확충됐고 2006년 이후 사회서비스 일자리 정책이 확대됐다. 2007년 사회서비스전자이용권(바우처 카드)사업이 시작됐으며 2007년 사회적기업법이 시행됐다. 2008년도에는 노인장기요양제도가 본격적으로 운영됐다. 2011년도에는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이 입법화됐다. 2019년에는 사회서비스원이 설립됐고 2020년 사회서비스원법이 제정됐다.

돌봄의 사회화 과정은 국가가 주도했으나 서비스 제공은 민간이 담당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민간의 서비스 제공기관(중개기관)이 노동자를 고용해 어르신·장애인·어린이 등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식이다. 시장 논리에 의해 돌봄의 제공이 이뤄졌고 여러 가지 폐해가 나타났다. 민간기관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온갖 편법·탈법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저하시켰다. 돌봄의 사회화는 돌봄의 민영화와 같은 말이 됐다.

돌봄노동자는 구체적으로 요양보호사·보육교사·장애인활동지원사 등이다. 돌봄노동자의 숫자만 150만명을 넘는다. 이들은 최저임금을 받는다. 편법적 휴게시간 책정, 휴게시간 미사용 등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는 최저임금 미만이다. 또한 고강도 육체노동으로 인한 근골격계질환, 감정노동에 따른 정신질환 등을 겪는다. 산업재해도 좀처럼 인정되지 않는다. 방문형·호출형, 소규모 사업장으로 운영되기에 노동조합을 조직하기도 단체행동을 하는 것도 어렵다. 돌봄이 제도화된 지 20여년이 돼 가지만 돌봄노동자들은 여전히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존재한다.

돌봄노동자 대부분은 중고령의 여성이다. 돌봄노동자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돌봄의 이중고다. 집에서나 현장에서나 돌봄의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돌봄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중첩적이다. 성역할 규범·젠더 권력관계에 의한 차별과 신자유주의 경쟁에 의한 차별이다. 한국 사회는 정작 돌봄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으면서 돌봄을 부차화한다. 무한경쟁의 시대, 누구에게나 돌봄이 필요하다고 하며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하지만 정작 제도화된 돌봄의 현장은 무시와 천대, 착취와 학대가 뒤범벅돼 있다.

돌봄의 사회화는 민영화가 아닌 공공화여야 한다. 돌봄은 공공재다. 모두가 모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다. 보육서비스·노인장기요양제도·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모두 재원은 국민의 세금이다. 서비스 혜택은 국민에게 고르게 돌아가야 한다. 멀리 있다고,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돌봄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애써 돌봄을 제도화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민영화한 돌봄은 수익성이 없는 곳에는 돌봄을 제공하지 않고 돌봄노동자의 임금을 깎아 수익을 전취한다. 근본적인 문제가 여기에 있다. 국가의 책임이다. 국가가 국민의 세금을 횡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돌봄의 공공화는 국가가 책임지고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 국가가 돌봄노동자를 직접고용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다양화해야 한다. 민영화의 폐해가 심각해지면서 정부는 비록 위탁이긴 하지만 국공립 돌봄기관을 증대해 왔다. 2019년에는 사회서비스원을 만들어 직접서비스를 강화하고 통합돌봄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국공립기관 및 사회서비스원 노동자의 고용은 안정적이며 최저임금 이상은 보장받는다. 서비스 이용자와 보호자는 만족도가 높으며 서비스 이용을 위해 장기간 대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서비스의 질과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은 함께 상승하고 하락한다.

최근 정부는 사회서비스를 완전 시장화하기 위해 사회서비스원을 통폐합하고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 가스·수도·전기와 같이 돌봄 영역에서도 공공부문을 샅샅이 뒤져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공공돌봄이 무너지고 있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은 60% 이상의 예산삭감으로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500명의 노동자가 해고될 위험에 있으며 1만명의 이용자가 서비스 이용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공공돌봄에 효율성의 잣대를 들이대며 구조조정을 하려고 한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사회적 돌봄이 같은 논리에 의해 다시 무너지고 있다.

돌봄은 사회의 최소한 안전장치다. 국가는 이러한 안전핀을 해체할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아울러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은 좋은 돌봄의 필수 조건이다. 불확실한 시대의 돌봄은 생존을 위한 최후의 보루이며 공고히 해야 할 소중한 가치다. 이용자·보호자·노동자 모두를 위한 돌봄의 체계를 국가가 구성해야 한다. 그러한 체계는 현재의 민영화한 방식이 아닌 돌봄노동자의 노동권과 건강권 보장을 바탕으로 한 공적체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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