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진희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모든 인간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돌봄에 의존하므로 돌봄노동(care work)은 인류의 핵심이며(국제노동기구, 2018) 현재와 미래세대의 노동력을 재생산한다는 측면에서 그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누구를 돌볼 것인가’에 관심은 크지만 ‘누가, 어떻게’ 돌봄을 수행하는지, 돌봄노동으로 인한 불이익은 무엇인지, 무엇을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그중에서도 주로 가정에서 이뤄지는 ‘무급 돌봄노동’은 노동시장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을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임에도, 이에 대한 가치는 외면받는 현실이다.

우리는 무급 돌봄노동을 표현할 때 ‘헌신’ ‘봉사’ ‘희생’ 등의 단어와 동급으로 포장하려는 경향이 짙다. 물론 헌신과 봉사·희생이 무급 돌봄노동 기저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찬사 이면에 있는 차별적 환경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헌신과 봉사·희생의 사전적 의미를 들여다보면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를 위해 자신을 바치거나 버리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무급 돌봄노동의 이면에는 고용안정 내지는 직장에서 승진과 안위(comfort), 사회적 지위, 자아실현을 위한 사회·경제적 활동 등을 포기한다는 강제적 동의가 자리한다. 이로 인해 일과 무급 돌봄노동을 동시에 수행하는 여성노동자는 이상적 노동자상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고, 낮은 고과평가와 승진 누락, 직장내 주변업무만을 맴돌게 된다. 그런데도 현실은 여전히 무급 돌봄노동은 숭고한 어머니의 희생정신으로만 포장된다.

무급 돌봄노동의 가치가 그간 주목받지 못한 배경에는 무급 돌봄노동이 시장경제의 중요한 두 축인 생산과 소비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시장경제 영역 밖인 비시장영역에 존재하며 ‘서비스의 가격’이 없다는 이유가 있다. 게다가 가구 내 돌봄노동은 경제적인 가치로 계산되지 않는다. 때문에 무급 가족돌봄의 여성화는 경제적 약자인 여성에게 무급의 돌봄노동을 할당하는 남성 중심적이고 성차별적인 맥락도 숨어 있다. 이러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돌봄경제가 구축돼야 한다. 돌봄경제 구축은 돌봄에 대한 인식 전환에서부터 시작된다. 쉽게 말해 지금처럼 무급 돌봄노동은 가구 내에서 경제력이 떨어지는 여성이 마땅히 해야 하는 무급 서비스가 아니라, 노동력을 유지하고 향상하며 ‘사회적으로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걸쳐 자리 잡아야 한다. 그리고 돌봄노동으로 인한 노동시장 내 차별을 어떻게 해소할지에 관한 중장기적 고민도 필수적으로 동반돼야 한다. 사회적으로 돌봄노동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개선된 사회적 인식하에서 돌봄노동으로 인한 여성의 노동시장 내 차별과 배제 등 고착된 수많은 문제를 풀어야 정책 실효성이 높아진다.

한편 무급 돌봄노동은 일하는 여성노동자에게 직장내 차별 같은 노동시장 내 문제점을 초래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가구 내 무급 돌봄노동만 수행하는 여성은 유급노동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각종 사회적 권리에서 배제되며, 가구 내 돌봄노동은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타인의 가족을 돌보는 것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노동경력이 되지만, 자신의 가족을 돌보는 것은 노동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분류된다. 특히 가구 내 돌봄은 다른 일을 통해 벌 수 있는 소득이 기회비용으로 작동된다. 최소한 2023년 최저시급인 9천620원의 가치를 지닌 노동인 것이다. 실제로 통계청은 무급 돌봄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추정했는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5.6%인 108조6천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중앙정부 차원에서 여전히 무급 돌봄노동자에 대한 실천적 지원은 미흡하다.

서울 성동구는 지난 11월 ‘경력단절’이라는 용어를 ‘경력보유’로 바꾸고 무급 돌봄노동을 경력으로 인정하는 ‘경력보유여성 등의 존중 및 권익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공표했다. 물론 경력인정 기간은 최대 2년으로 제한되지만, 처음으로 무급 돌봄노동을 경력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렇게 인정된 경력은 성동구 출자·출연기관 인사규정에 반영한다. 성동구도시관리공단과 성동문화재단·성동미래일자리 세 곳이 인정경력의 50%를 호봉 산정에 반영하는 인사규정을 마련했다. 또한 이와 같은 사업에 참여하는 협약기업에는 다양한 인센티브를 줘 민간 확산도 도모하고 있다. 이는 가구 내 무급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중앙정부 정책설계에 일종의 안내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차별적 환경을 기꺼이 감수하는 희생으로만 무급 돌봄노동을 여길 것이 아니라 이들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정당한 보상이 마련돼야 하지 않을까.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jhjang8373@inoch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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