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

지난해 3월21일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발생한 하청업체 소속 고(故) 이동우 정비노동자 산재 사망사고와 관련해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은 사건 발생 10개월이 지난 1월에서야 관련자들을 수사 대상으로 입건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였다. 이어 이달 14일 대구지검 포항지청에 사건을 기소의견 송치했다. 이미 경북경찰청은 지난해 8월 동국제강 포항공장장과 하청업체 대표 등을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검찰에 송치한 것과 비교해도 지나치게 늦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구노동청은 지난해 5월 검찰에 입건수사 지휘를 올렸으나, 검찰은 무려 3회에 걸쳐 보강수사를 요구했다. 이로 인해 사건은 10개월 동안 입건조차 되지 못한 채 내사 상태에 있었다. 원청인 동국제강의 안전관리 부재가 명백한 산재사망 사건임에도 10개월이나 입건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어 온 검찰의 수사 태도에 비춰 볼 때, 검찰이 제대로 된 수사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대구노동청의 송치내용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동국제강의 최고경영자인 장세욱 대표이사(부회장)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의 입건 대상에서 제외하고, 그 대신 월급 사장이었던 김연극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 송치하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형적인 꼬리자르기식 수사로, 기업의 최고경영자에게 면죄부를 준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고경영자를 입건 대상에서 제외한 것 또한 검찰의 지휘에 따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사실관계를 들여다보면, 동국제강은 2018년 7월1일부로 조직개편과 함께 임원인사를 단행, COO(Chief Operating Officer) 역할을 수행하는 사장 직책을 신설했다. 후판사업본부장이었던 김연극 전무를 사장으로 승진·임명하고 영업과 생산을 총괄하도록 했다. 동국제강은 2019년 3월15일 주주총회와 이사회에서 김연극 사장을 추가로 대표이사(각자)로 선임해 지난해 12월16일 사임할 때까지 장세욱 대표이사(부회장)-김연극 대표이사(사장) 체제로 운영했다. 지난해 3월24일 보고된 2021년도 동국제강 제68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임원 현황에 장세욱 대표이사(부회장)의 담당업무는 CEO(Chief Executive Officer)로, 김연극 대표이사(사장)의 담당업무는 COO로 공시돼 있다. COO는 기업 내 사업을 총괄하며 최고경영자가 전달한 계획을 수행하는 최고운영책임자에 그치며, CEO야 말로 회사와 관련된 모든 업무에 대해 최고 결정권을 가지는 기업의 최고경영책임자다.

동국제강은 고인이 된 장경호 회장이 창립한 회사로 장씨 일가가 지배하는 기업이다. 현재 창립자의 3대인 장세주(형)에 이어 장세욱(동생)으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져 왔다. 형(장세주)의 13.94%에 이어 장세욱의 회사 지분은 2대 주주로서 9.43%인 반면 김연극의 지분은 0.01%에 불과하다. 사건 당시 동국제강은 장세욱 대표이사를 CEO로, 김연극 대표이사를 COO로 지위를 명시하고 장세욱 부회장-김연극 사장 체제로 운영됐다. 이는 김연극 사장이 장세욱 부회장에게 보고하는 체제로서, 회사 경영의 정점이 장세욱 대표이사임을 명백히 한 것이다.

위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실질적으로 동국제강을 대표하고 총체적인 경영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가지며 사업의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사람은 장세욱 대표이사일 수밖에 없다. 설령 김연극 대표이사가 사업 내 업무(영업과 생산)를 총괄하는 사람으로서 경영책임자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장세욱 대표이사는 동국제강을 대표하고 총체적인 경영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가지며 사업의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CEO(최고경영책임자)로서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지게 된다.

그럼에도 검찰은 대기업 사주 일가의 3대로 진짜 경영책임자인 장세욱 대표이사를 입건조차 하지 않고 수사대상에서 제외해 면죄부를 주고 있다. 이는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진 실질적인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부여하고 의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진짜 경영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법의 취지를 몰각한 처사다.

검찰의 거듭된 보강수사 요구와 진짜 경영책임자에 대한 입건 제외는 관할 검찰청과 검사의 판단이기보다 대검에 설치된 중대재해TF의 지휘에 따른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나고, 그동안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사건이 229건 발생했는데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로 기소된 사건은 12건에 그치고 있다. 더욱이 기소 대상에는 대기업과 대기업의 최고경영자 관련 사건은 단 1건도 포함돼 있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계의 요구에 부응해 거듭 법을 손보겠다고 공언하면서, 검찰 조직이 권력자의 의지에 따라 법집행을 사실상 유예하거나 면죄부를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고 이동우 유족과 지원모임은 이달 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검찰이 동국제강의 진짜 경영책임자 장세욱 대표이사를 입건하지 않는 처사에 강력히 유감을 표명했다. 실체진실에 부합하는 수사를 촉구하기 위해 장세욱 대표이사를 고소했다. 세간의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검찰은 ‘바지’가 아닌 ‘진짜’ 경영책임자를 입건하고 제대로 수사해 기소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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