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기완노나메기재단 관계자들이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연윤정 기자>

지난 15일 저녁 10·29 이태원 참사 분향소가 차려진 서울시청 앞은 경찰과 시민들이 뒤섞인 채 차가운 공기만이 감돈다. 경찰관들이 줄지어 서 있는 분향소 옆길은 펜스로 막혔다. 펜스 뒤 도로 한편에 마련된 고 백기완 선생 2주기 추모문화제 행사장. 노동자·시민들이 추모문화제 시작 전부터 이미 행사장에 들어차 있다. “거꾸로 가는 시절 그리운 백기완의 불호령”을 떠올린 추모문화제는 백기완노나메기재단과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이 공동주최했다.

“이태원 참사 추모 함께했을 것”=“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되지 않은 것을 돌아가실 때까지 안타까워하셨다고 들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를 접하셨다면 얼마나 애통해했을지 짐작이 됩니다. 그래도 살아남은 우리가 기죽지 말고 불의와 싸우며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 노나메기 세상을 만드는 데 좀 더 힘냈으면 좋겠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아픔을 함께하기 위해 분향소 옆에서 준비한 2주기 추모문화제는 세월호 4·16합창단의 여는공연으로 문을 열었다. 합창단 공연이 끝난 뒤에는 참가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며 이 곡의 원작자인 백기완 선생을 떠올렸다.

사회를 맡은 김수억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공동소집권자는 “백 선생님이 살아 있었다면 기죽지 마라, 딱 한 발 떼기에 목숨을 걸어라, 싸워서 노나메기 세상을 만들라고 불호령을 내렸을 것”이라며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커녕 분향소를 빼앗는 정부에 분노하며 노나메기 세상을 꼭 만들자고 다짐하자”고 말했다.

◇“정신 차려라, 불호령 그리워”=영상 인사가 이어졌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철폐연대 상임대표는 “백 선생님이 계시면 지하철을 같이 타고 싶다”며 “(우리에게) 욕할 때 백 선생님 뒤에 숨으면 든든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이정옥씨는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다가 여기까지 왔다”며 “특수본 수사 결과는 아무것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대통령은 사과 한마디 없다”고 지적했다. 차헌호 비정규직이제그만 공동소집권자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못 살겠다고 거리로 뛰쳐나가는 정세”라며 “백 선생님이 있었으면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손잡고 싸우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죽지 말고 눈 똑바로 뜨고 싸우라 하셨을 것 같다”며 “민주노총 120만 노동자가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싸워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양규헌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상임이사는 “한때 꾸지람과 불호령을 듣고 야단 맞았는데 그리울 때가 있다”며 “이 미친 세상에 같이 미쳐야 한다, 정신 차려라 하고 말씀하셨을 것 같다”고 고인을 그리워했다.

세월호 4·16합창단이 여는공연을 하고 있다. <연윤정 기자>
▲ 세월호 4·16합창단이 여는공연을 하고 있다. <연윤정 기자>

◇“참사공화국 방치하는 무도한 정권 심판을”=“우리 딛고 선 세상은 돈과 힘으로 얼룩져진 세상/ 너와 나 우리 이렇게 횃불로 이 어둠의 세상을 밝히리/ (중략) / 모여라 외쳐라 온몸으로 나서라 모두의 꿈을 위해/ 우리들 가진 것 함께 나누며 살아갈 해방의 그날 위해”(<횃불의 노래> 중에서)

박은영 민중가수의 공연에 이어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이 발언대에 올랐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진창희씨는 “그날 이후 우리는 지옥에 살고 있다”며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의 진실은 모두에게 도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한 호주인 희생자 아버님에 따르면 희생자를 운구하는 데 모든 비용을 호주 정부가 부담하고, 아직도 총리는 매주 유가족에게 편지를 보내 위로한다”며 “우리는 왜 그런 총리, 대통령이 없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을 참사공화국으로 방치하고 있는 무도한 정권을 비판하고 책임을 물어 달라”며 “피해자 중심 독립조사기구와 특별법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유흥희 전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영상)과 행동하는 성수자인권연대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신학철 이사장과 명진 스님 등 재단 관계자들은 무대에 올라 결의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고통받는 현장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백기완의 불호령을 따라 같이하겠다”며 “우리는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의 그날까지 ‘곧은목지’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단법인 터울림과 진도북놀이연구회가 <임을 위한 행진곡> 태평소 연주에 이어 양북 날뫼북춤으로 추모문화제는 막을 내렸다. 참가자들은 행사장을 떠나며 분향소를 들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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