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사회적 참사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는 잘못된 관행이 지속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18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 추모위원회 주최로 15일 오후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열린 사회적 참사 관련 진상규명 촉구 토론회에서 나온 지적이다.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생명안전 시민넷·공공교통네트워크·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가 공동 주관한 이날 토론회는 대구지하철 참사와 세월호·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과정과 책임자 처벌 현황 등을 점검했다. 2003년 2월18일 발생한 대구지하철 참사는 18일 20주기를 맞는다.

이날 전문가들은 국내 재난 관련 사고보고서 작성이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약속을 했지만 참사 진상규명을 담은 재난사고조사보고서는 작성되지 않았다”며 “세월호 안전사회소위원회는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와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건 등을 점검했는데, 재난의 구조적 원인 규명을 위한 보고서는 작성되지 않고 대응과 수습, 복구 과정에 대한 정부활동 홍보용 백서만 작성됐다고 결론지었다”고 지적했다.

기관사·선장·경찰서장 등 일선 관리자 비난 집중

정부 주도로 작성한 백서에는 대구지하철 참사의 구조적 원인 규정이 누락됐다. 전 연구원은 “왜 기관사를 비롯한 담당자가 (기관차) 화재에 제대로 대응을 못했는가에 대한 제도적·관행적·기술적 원인과 방화가 대형 재난으로 확대했는가에 대한 규명이 부재하다”며 “대형 재난으로 증폭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원인의 상호 연결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현장 책임자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가 실질적 안전경영과 안전운행 결정권자가 책임을 벗게 됐다”고 지적했다. 재발방지 대책도 물론 마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사회적 재난은 가해자나 현장 책임자를 악마화하는 방향으로 치달았다.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에는 방화를 저지른 김씨의 정신질환 이력을 꼬집었다. “방화 용의자는 정신병력이 의심되는 50대 장애인”으로 호명됐다. 또 당시 대피한 기관사가 “승객을 버리고 도주한 기관사”로 지목됐다.

유사한 일은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에서도 반복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구조적 원인 규명보다 세월호 선장과 기관사를 표적으로 비난이 집중됐다. 이태원 참사에서는 정치권이 나섰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용산서장 제 정신이냐, 세월호 선장보다 더하다”는 취지로 발언하면서 “용산서장 미스터리를 푸는 게 진상규명”이라고 강조했다.

추모위원회 “종합백서 발간 사업 추진”

토론회에 앞서 대구지하철 참사 20주기 추모위원회는 국회 생명안전포럼과 함께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들은 “대구지하철 참사에 대한 원인과 수습 과정 문제가 여전히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공식화되지 못한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사고조사보고서를 포함한 20년간의 참사 수습과 추모과정 문제, 유가족 활동을 정리하는 종합백서 발간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제대로 된 추모사업을 위해 중앙정부와 대구시, 2·18안전문화재단의 역할과 책임을 촉구한다”며 “중앙정부와 대구시는 유가족 명예를 회복하고 유가족과 약속한 추모사업을 제대로 실행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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