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내복에 두꺼운 점퍼를 벗지 못하고 산다. 길에서 바들바들 떨었던 기억 탓이다. 칼날 같던 바람이 어느새 산들산들, 훌쩍 창밖으로 봄기운 스민다. 습관처럼 껴입은 나는 별 수도 없이 땀 흘린다. 그제야 봄 가까운 줄을 안다. 청소해야지, 이불을 빨아야지, 내 맘속 묵은 때도 좀 털어야지, 새 봄 맞이 계획을 세워 볼 만한 때다. 봄볕 소중한 줄을, 겨울 혹독하게 겪은 사람이 안다. 저기 병원 청소노동자는 인터뷰 기다리는 그 시간을 그냥 보내질 못하고 틈틈이, 꼼꼼히 걸레질한다. 창가에 가지런히 둔 화분을 제집 것인 양 살뜰히 살핀다. 우유를 물에 섞어 주면 좋다고 집과 일터에서 비밀의 화원을 가꾼 노하우를 전한다. 빨간색 제라늄꽃과 초록의 이파리는 그곳 재활의학병동 휠체어 탄 환자와 간병인 누구나의 시선을 오래 잡아끈다. 사방에 꽃망울 팡팡 터지는 창밖의 봄을 떠올리게 할 테다. 걸레질하는 ‘여사님’은 카메라 앞에 서기를 처음에 꺼렸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단다. 곧, 찍어도 괜찮다고 했다. 정규직 됐다니 그건 좋은 일이었다. 월급이 많이 오른 것도 아니라 민망하다고 노조 사람은 말했지만, 복지 혜택과 고용안정이 저이에게 봄볕 같았다. 마음 써 가꾼 화분 옆에 앉는다. 손 뻗어 꽃 옆에 둔다. 시선은 카메라를 향한다. 사진첩에 수십 장은 보일 법한 그 포즈를 자연스레 해 낸다. 능숙한 걸레질에 바닥이 반짝인다. 살짝 주름진 얼굴에 봄볕 들어 웃음꽃 피어났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