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난달 31일 고용노동부가 ‘2023년 산업안전보건감독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발표했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과 마찬가지로 안전보건 정책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엿보인다. 일방적 규제 완화 빌미로서 자율규제가 아니라 ‘노·사가 함께 스스로 위험요인을 진단·개선하는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예방 노력에 따라 결과에 책임을 지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진전돼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 ‘자기규율 예방체계의 핵심수단인 위험성평가를 중심에 두고 모든 점검과 감독에 적용’하겠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세부 사항에 있어서도 전향적인 지점이 많다. 무엇보다도 사업장을 대상으로 무엇을 점검하고 감독하겠다는 선언만이 아니라 근로감독관들이 먼저 무엇을 하겠다라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앞으로’ 근로감독관은 사전에 해당 사업장의 산재승인 및 산업재해조사표 내용을 분석하고 유사·동종 업종과 근무환경 등에서 나타난 사고유형을 수집하고 분석해 재발방지대책 및 핵심 안전조치 등을 사전학습한 이후에 현장 점검·감독을 수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여태까지는 그렇게 해오지 않았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은 잠시 미뤄 두자. 앞으로 그렇게 하기만 한다면 얼마나 솔직하고 화끈한 진전인가. 또한 중대재해 발생한 사업장 감독(중대재해 사후감독)을 안전주체들의 역할 이행 여부에 대한 1차 점검, 자율개선을 확인하는 2차 감독, 이행을 점검하는 3차 감독까지 3회에 걸쳐 진행하겠다는 부분도 의미가 있다. 특히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 감독시에는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근로감독관이 ‘직접’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겠다는 계획도 높이 산다. 근로감독관이 위험성평가를 하는 것이 아이러니라는 지적도 있지만, 중대재해를 ‘위험성평가’라는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고 분석해 공유하는 것은 의미 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도대체 진짜 위험성평가가 무엇인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기업에게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수치화된 산재발생 위험도, 부상 위험도, 사망 위험도, 근로손실 규모를 알려 주는 ‘위험경보서’보다는 근로감독관의 말 한마디가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근로감독관이 동종업종의 구체적 사고사례, 재발방지대책과 핵심 안전조치를 빠삭하게 아는 데다가 심지어 중대재해 사업장에 대한 위험성평가를 직접 수행한 경험이 있다면 말이다.

핵심은 어떻게 이행력을 담보할 것인가다. 민주노총은 논평에서 위험성평가 현장 정착이라는 방향에는 동의하면서도, 처벌조항이나 노동자 실질적 참여 보장도 없이 탁상행정으로 기업의 면죄부만 주게 될 것을 우려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관리 체제를 구성하는 이들의 업무에 ‘위험성평가’에 관한 사항을 포함시키고 이것이 수행되지 않을 경우 사업주에게 과태료 몇백 만원을 부과하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이행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말이겠다. 그러나 위험성평가 자체에 대한 처벌 규정은 자칫 형식제도로 전락한 위험성평가 문제를 고착화할 가능성도 있다. 먼저 도입됐으나 위험성평가의 한 부분이라 할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는 미이행시 사업주의 보건조치 위반으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도 가능하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참여는 저조하고 외주화·형식화·형해화 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특정한 기술적·구체적 조치를 법률로 정한 것이 없더라도 방법은 있다. 사업주가 상황에 맞는 합리적 수준에서 적절한 안전보건조치를 수행해 예견되는 위험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하는 ‘포괄적 의무’가 전제되어 있는 경우가 그렇다. 위험성평가를 통해서 상황과 조건에 맞는 안전보건관리 형식과 내용을 찾아 나갈 동기가 높아질 수 있다.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만 준수하면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다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안전보건관리시스템 전체를 꿰는 ‘방법론’이자 ‘철학’으로서 ‘위험성 평가’가 정착하기는 쉽지 않다. 위험성 평가 실시 여부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사업주의 안전보건 의무에 대한 포괄적인 규율방식으로 큰 틀의 변화 모색이 필요하다.

물론 현행법(산업안전보건법 53조)에서도 고용노동부 장관은 사업주가 안전·보건에 관해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 노동자에게 현저한 유해·위험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때 사용중지나 시정조치를 명할 수 있다. 사업주가 시정조치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는 작업중지를 명할 수도 있다. 하세월인 법원 판결보다 훨씬 신속하게 관철될 수 있다. 당장에 점검이나 감독을 몇만 건 하겠다는 계획보다는 단 몇 건의 ‘위험성평가 특화점검’에서라도 미비한 안전보건 조치에 대해서는 안전보건규칙상의 리스트를 넘어서 ‘사용중지’ ‘시정조치’ ‘작업중지’ 등 적극적 행정을 펼치고, 한편으로는 규칙의 문구와 달라도 실질적 안전을 확보하는 조치라면 승인해 주는 행정력을 발휘하는 것이 우선이다.

위험성평가 정착을 위해서는 불신과 의심의 어깃장 대신 행정당국과 노·사 모두 역량과 경험 축적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진짜 위험성 가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우직한 점검과 감독만이 그 시간을 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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