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순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경주사무소)

어젯밤은 평소처럼 좋은 꿈을 꿨습니다. 익숙한 알람 소리를 듣고 부은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이를 닦고 따뜻한 물에 몸을 적십니다. 즐겨 입는 티와 바지를 걸치고, 여느 때와 같이 버스로 회사에 갑니다. 출근시간에 맞춰 회사에 도착하니 잠 없는 우리 부장님 평소처럼 제일 먼저 나와 계십니다. 아차! 오늘은 월급날이네요. 변함없는 월급이지만 그래도 신이 납니다. 타자 치는 손가락도, 프레스를 밟는 발도 덩달아 신납니다. 평소처럼 점심을 먹는데 ‘이번달도 최고 매출, 올해도 최고 매출 예상’ 자축을 하는 회사 공지가 올라옵니다. 영어로 쓰여 있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연말 성과금이 나오겠다는 생각에 설렙니다. 퇴근시간에 맞춰 퇴근 준비를 하는데 월급 문자가 왔습니다. 월급날은 항상 치맥이 당깁니다. 퇴근길에 가족·애인·친구에게 연락해 봅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행복한 하루입니다. 내일 또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겠지요.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릅니다. 평소처럼 회사에 출근하니 가장 일찍 출근한 우리 부장님, 사색이 돼 있습니다. 영어 잘하는 우리 과장님 어제는 그렇게 신이 나셨더니, 오늘은 화가 나 계십니다. 역시 직장인은 월급날이냐 아니냐에 따라 기분이 다른가 보다 생각하고 넘어가려는데 우리 과장님 절망적인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이야기합니다. “회사 자본 철수한대. 이번달에 폐업하니까 이제 모두 해고래….” 분명 올해 최고 매출이 예상된다 했는데, 갑자기 자본 철수니 폐업이니 하는 말이 와닿지 않습니다. 17년 동안 회사에 다닌 부장님은 아직 애들 대학도 다 못 보냈다고 한탄하십니다. 10년 동안 회사에 다닌 기러기 아빠 과장님은 담배만 뻑뻑 피우십니다. 그제야 나도 걱정거리가 떠오릅니다. “우리 엄마 병원비, 내 자동차 할부….”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옵니다. 모든 것이 평소처럼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닌가 봅니다.

일반적인 상황과는 전혀 달라 쉽게 와닿지 않을 이야기일 것입니다. ‘회사는 연일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회사가 자본을 철수하면서 거리로 내쫓기는 이야기’. 외국인투자기업이 많은 제가 사는 동네 이야기입니다. 제가 사는 대구·경북지역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토지 무상제공, 각종 세재 혜택 등을 무작정 퍼줍니다. 외국인 투자기업은 혜택을 보고 대구·경북지역으로 와 공장을 짓고 사업을 시작합니다. 우리 시장님은 가장 큰 정치업적이라며 열심히 떠들고, 더 많은 혜택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생기거나, 투자자본이 변경되거나,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다른 나라가 존재하거나, 각종 혜택이 줄어들거나, 혹은 ‘그냥’과 같은 이유로 외국인 투자기업은 갑자기 사업을 정리하고 우리나라를 떠나고자 합니다. 외국인자본 회사는 만성 흑자든, 지금까지 받아왔던 지자체의 혜택이든, 함께 일하던 노동자든 모두 제쳐 놓고 아무런 책임 없이 홀라당 우리나라를 뜹니다. 구미에 소재한 일본 회사에서 일하던 누나, 대구에 소재한 미국 회사에서 일하던 옆집 형, 영천에 소재한 일본 회사에서 일하던 학교 선배는 한순간에 실업자가 됐습니다. 매출도 잘 나오고 계속 사업을 할 수 있는 회사가 아무런 예고 없이 우리를 내쫓고 사업을 정리해 우리나라에서 도망갑니다. 우리 동네뿐일까요? 경기도에 소재한 일본 회사도 그렇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전국 어느 지역에서 언제 누구에게 일어날지 모르는 일입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해결해 줄 거라 믿었는데, 회사에 대한 제재는커녕 같이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법적 판단을 받기까지는 너무 길고 험난합니다. 결국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우리는 기업과 정부, 법과 싸울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일상이 돼 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이 내 일상과는 전혀 달라 그리 와닿지 않는 이야기인가요? 그래도 외국인투자기업에서 일하는 분이라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작은 연대라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내가 다니는 회사도 홀라당 도망가서 그 연대와 관심이 필요할지 모르니까요.

우리가 어떻든 평소처럼 좋은 꿈을 꾸고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그런데 오늘 출근해 보니, 평소처럼 안녕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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