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기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울산사무소)

조선소 물량팀 용접사로 3년 동안 일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울산 온산공단에 있는 세진중공업에 다녔다. 현대중공업을 시작으로 여러 곳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일했지만 물량팀은 처음이었다.

물량팀은 조선업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최말단이다. 조선소 원청은 1차 하청업체에게 도급을 준다. 1차 하청업체는 2차 하청업체에게 재도급을 준다. 하청을 줄 때마다 원청 회사가 단가를 후려치기 때문에 아래 단계로 갈수록 하청업체의 이윤이 줄어든다. 낮은 단계의 하청일수록 이윤을 보전하기 위해 공기단축에 목을 맨다. 하청업체들은 물량을 빨리 쳐내기 위해 물량팀을 사용한다.

물량팀은 소사장제처럼 운영된다. 물량팀장은 보통 10여명에서 30여명으로 팀을 구성하고 팀 소속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준다. 형식상으로는 물량팀장이 사용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물량팀장도 팀원들과 같이 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청업체들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용접팀·사상팀·파워공팀·샌딩팀 등 직종별로 물량팀을 여럿 사용한다. 물량팀은 선박 내 작업구역을 완성하는 만큼 기성금을 받는다. 이렇게 받은 기성금을 물량팀장이 팀원에게 인당 얼마의 일당을 정해 지급하는 식이다.

물량팀 노동자들은 가혹한 노동환경에 노출됐다. 한여름 탱크 안에서 호리젠탈 용접을 할 때는 땀을 한 말씩 흘렸다. 한겨울 어퍼데크 블록 위에서 꽁꽁 언 채로 밤샘 작업을 하고 나면 온몸이 돌처럼 굳었다. 조선소 노동환경이 본래 가혹하지만, 그 고통은 물량팀이기에 가중됐다. 물량을 빨리 쳐내는 것이 사명이기 때문에 안전작업을 신경 쓰지 않았다. 유해·위험작업에 내몰리고 산재사고가 잦았지만, 물량팀 노동자들은 산재 신청을 하기도 어려웠다. 산재가 발생하면 업체가 페널티를 문다는 이유로, 웬만한 사고는 자비 처리를 하라고 하거나 공상 처리로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

물량팀은 오직 공기 단축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장시간 밤샘 노동이 잦았다. 하루 기본 노동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9시간이지만, 밤 9시까지 잔업은 일상이었다. 밤 12시 넘게 일하는 날도 많았다. 그러고도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다.

물량팀 임금은 대표적인 포괄임금제다. 이른바 일당직 임금체계가 그대로 적용된다. 기량에 따라 A·B·C로 등급을 구분하고 일당에 차이를 둔다. 임금명세서는 따로 없다. 일한 날짜가 적힌 공수표만 받았다. 임금계산은 공수표에 표시된 일한 날짜에 자기 일당을 곱하면 끝이다. 오후 6시까지 하면 한 대가리(하루 9시간의 기본 근로시간을 ‘1공수’ 또는 ‘한 대가리’라고 불렀다), 밤 9시까지 하면 한 대가리 반, 밤 12시까지 하면 두 대가리를 받는다. 일당 이외에 수당은 없다. 주휴일도 연차휴가도, 특근수당도, 야간수당도 따로 없었다. 4대 보험도 가입하지 않았고, 퇴직시 퇴직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내가 일하던 때는 그나마 조선업 호황기였지만, 2010년 이후로는 경기가 급격히 악화된 탓에 업체 폐업이 더 빈번해졌다. 물량이 줄다 보니 업체들은 고용을 책임질 필요가 없는 물량팀을 더 선호했다. 상주업체가 폐업한 자리에는 프로젝트 협력사가 등장했다. 이들 업체들은 노동자들을 1개월짜리, 3개월짜리 단기 계약직으로 고용했다. 긴급한 작업을 처리하기 위해 물량팀이 투입됐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업체 자체를 폐업했다. 업체가 물량팀장에게 기성금을 지급하지 않고 폐업하면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기 어려웠다. 최근에는 물량팀장뿐 아니라 팀원들 각자를 개인 사업주로 둔갑시키는 행태도 나오고 있다. 업체는 노동자와 아무런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서 일당에서 사업소득세 3.3%를 떼고 지급한다. 개인 사업자라면서 근로기준법상 법정수당, 퇴직금 등 근로자임을 전제로 한 일체의 금원 지급 의무를 회피한다. 4대 보험은 당연히 가입하지 않고, 산재가 나도 책임지지 않겠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파업으로,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저임금 문제가 알려졌다. 조선소 경기 악화 이후 최저임금 수준으로 떨어진 임금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그중에서도 조선소 물량팀은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의 문제를 다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산재에 무방비고, 포괄임금제를 악용한 임금착취가 일상이다. 업체 폐업, 프로젝트 중단 등으로 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상습적인 임금체불에 시달리고 있다. 하청의 계약직이 등장하더니, 이제는 하청의 특수고용직까지 등장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조선소 물량팀을 방치해서는 비정규 노동자의 현실이 개선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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