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프랑스혁명은 민주주의와 노동운동의 분기점이었으나 혁명 직후 ‘결사금지법’이 제정됐다. 정치결사도 일부만 허용됐고 노동조합 등 결사체 활동은 불가능했다. 혁명세력도 ‘모두의 이익’이나 ‘보편의지’를 믿기에 집단·조직은 직접 인민주권 실현에 방해된다고 봤다. 프랑스에서 결사금지법이 폐지된 것은 110년 후의 일로 혁명과 반혁명의 피 흘림을 겪고 나서다. 이후에도 ‘공익’이란 ‘절대 선’보다 이견을 조정한 ‘합의’에 가깝고, 만장일치보다 의견의 불일치가 좋은 변화를 만든다는 민주주의의 원리가 자리하는 데 긴 역사가 필요했다. 우리도 1987년에 민주화됐으나 프랑스혁명 직후와 비슷한 심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국가경제’와 ‘국익’을 강조하며 기업과 노동의 이해를 애초부터 일체처럼 가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와 의견이 다른 집단을 ‘기득권’이나 ‘적폐’로 공격하는 화법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권위주의 체제 때 만들어진 법·제도가 온존해 결사체의 자유로운 활동을 가로막는 점이다. 우리 법규제는 정치에서 가장 큰 결사체인 정당, 사회영역의 가장 큰 집단인 노동조합의 내실 있는 성장을 저해한다.

많은 이들이 정당이나 노동조합이 장밋빛 공약이나 선명한 주장만 남발하며 진짜 실현은 ‘책임’ 지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물론 한국의 노동세력은 권력이 약해 위정자에게 구체적 내용보다 강경한 내용을 ‘촉구’하는 방식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민주화 30년이 넘어서며 노동조합도 적지 않은 정부 회의체에 참여하게 됐고 지자체 수준에선 통치에 관여할 기회가 늘었다. 그럼에도 당장 사회가 바뀔 듯한, 거대하지만 공허한 대안을 내세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정당과 노조가 ‘좋은 말’보다 진짜 변화를 위한 구체적 내용을 생산할 수 없는 데에는 우리 정당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탓도 있다.

민주주의 국가 중 정당법을 따로 만들어 무엇이 정당인지 일일이 규제하는 나라는 드물다. 조합원의 자격을 따져 노동조합 가부까지 최종결정하는 국가도 찾기 어렵다. 결사의 양식과 내용을 법으로 정하는 일 자체가 시민의 자유로운 활동을 저해할 수 있어서다.

더욱이 우리 정당법은 당직자를 총 200명(중앙당 100명, 시도당 100명)으로 정하고 있다. 인원을 늘리면 국가보조금을 삭감해 사실상 인력 규모를 제한한다. 결국 각 정당에서 대표를 보좌하고 홍보·언론 대응, 선거 준비, 기본 조직운영 인력을 제외하면 실제로 정부 제도 전반을 점검하고 당 정책을 생산할 수 있는 인력은 극히 적다. 양대 노총도 총연맹 간부는 각각 100명을 넘지 못하며 정책담당-연구·조사인력은 넓게 잡아도 40명을 넘지 못한다. 산하 산별노조·연맹도 튼튼한 소수를 제외하면 안정적으로 정책을 설계하는 인원은 한 자릿수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체제에서 노조전임자의 인원과 임금 지급에 대한 내용을 노사 자율에 맡기지 않고 법조문으로 규제하는 나라도 거의 없다. 2010년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가 실시되며 하부단위로 갈수록 노조전임자가 급감했고 정책인력은 더욱 줄었다.

결국 한국의 대표 결사체들이 정책 내용을 생산하는 방식은 ‘외주화’다. 선거나 조직의 방향을 결정할 때 상당한 숫자의 전문가를 불러 모으고 용역연구를 발주한다. 노조든 정당이든 전국조직을 활용해 다양한 요구를 수렴하고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살아 있는 정책이 되겠지만 소수 실무진이 사회 제반 영역을 감당하긴 어렵다. 매번 새롭게 꾸려지는 자문위나 개인 단위 각 분야 전문가들이 아이디어 수준의 내용을 합쳐 공약집이나 정책자료집을 만드는 일은 불가피한 선택에 가깝다. 정책을 만들고 책임지는 주체가 불확실하니 권력을 쥐어도 실효성 있는 정책실현에 한계가 있다. 노동계도 조합원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폭넓게 일하는 시민의 삶 전반을 바꾸는 정책을 만들고 역할을 다하라는 요구를 모르지 않으나, 현재 인력으로 현안 대응과 정해진 회의체에 나가기만도 벅차다. 관성화된 주장을 반복하며 ‘올바른’ 이야기 총합에 그치는 이유 중 하나다.

2022년 한국의 당원수는 1천만명을 넘어 전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노조 조직률도 15%에 가까워 이제 독일·일본의 16~17%에 비교해 낮다고만 할 수 없다. 그런데 덩치에 비해 내실 있는 조직이 되도록 역량을 발휘할 인원은 너무 적다. 웬만한 중소기업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무자로 100만명 넘는 거대한 행정부처의 정책을 점검하고, 기업과 대등하게 산업전환 정책을 논할 수 있을까. 물론 당비나 조합비 수준을 현실화해 스스로 재정을 확충하고 인력을 충원하려는 주체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구조적 문제도 개선돼야 정당과 노조의 실천도 쉬워진다.

결사의 ‘자유’란 국가가 집단과 조직의 인력과 예산 사용방식에 간섭하지 않고, 규제는 자유로운 활동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법·제도는 지지자나 조합원은 물론 대다수 시민에게 ‘책임’ 질 수 없는 게임을 반복하게 부추긴다. 이는 ‘집단과 조직’에 대한 시민의 불신과 혐오를 부추긴다. 자유롭고 다양한 사회를 가로막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결사금지법’의 실질적 폐지가 필요하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haeyoonj@naf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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