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6일 낮 서울도서관 앞에서 시민분향소 철거를 예고한 서울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서울시와 경찰이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추모 분향소를 6일 강제철거할 예정이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시의 행정대집행 방침에 분노한 유가족과 시민들이 막아 섰다. 서울시는 8일 오후 1시까지 철거할 것을 요구해 희생자 가족과 서울시·경찰 간 긴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오전부터 충돌, 유가족 2명 병원 실려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는 지난 4일 분향소를 설치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6일 오후 1시까지 자진철거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유가족 단체는 이날 오후 1시에 분향소 기자회견 계획을 밝히며 맞불을 놓았다.

기자회견이 시작하기 전인 오전부터 유가족·시민이 경찰과 충돌했다. 행정대집행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충돌 과정에서 유가족 2명이 앰뷸런스에 실려 갔다.

오전 11시, 서울시청 건물에서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희생자 고 최민석씨의 어머니가 쓰러져 있었다. 그가 작은 난로를 분향소에 들고 오자 경찰은 사용 허가받지 않는 물품이라며 막았고, 그 과정에서 넘어져 바닥에 머리를 크게 부딪혔다. 함께 항의하던 고 정주희씨 어머니도 쓰러졌다. 주변에 있던 유가족들은 “경찰차가 막아서 응급차가 못 들어오고 있다”고 절규했다.

김덕진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대외협력팀장은 “병원에 실려간 두 분은 수액을 맞고 있고, 가족들이 와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서울시에 항의하기 위해 서울시청 건물 앞으로 갔다. 오세훈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건물 안으로 진입하려는 유가족들을 경찰은 막아섰다. 희생자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는 오 시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차벽과 펜스 치는 경찰, 참사 때는 왜 없었나”

▲ 정기훈 기자

오후 1시 서울시의 이태원 참사 분향소 철거 시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태원 참사 당일 보이지 않았던 경찰이 추모 현장에서는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지안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시민들이 줄을 잇고 있는데 경찰은 차벽과 펜스를 설치해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사무처장은 이어 “참사 때 예방, 대응, 피해자 지원까지 제대로 한 것이 없었다”며 “그때도 이렇게 움직여 줬다면 우리가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지 않냐고 꼬집었다.

서울시가 유가족측에 녹사평역 지하 4층에 임시 추모 공간을 마련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에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사그라질 때까지 그 땅 깊이 들어가서 숨 못 쉬고 똑같이 죽으라는 거냐”며 “그쪽으로 못 간다고 했지만 서울시는 우리와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치인들은 오세훈 서울시장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이창민 민변 변호사는 “몇 평 남짓한 분향소가 통행에 불편을 주지 않는다”며 “진정한 공익적 목적은 분향소를 설치해서 시민들과 함께 슬퍼하고 연대를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청에 앞에 모인 시민들은 이태원 참사는 누구나 당할 수 있고 내가 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오전부터 남편과 함께 분향소를 찾았다는 ㄱ씨(성북구)는 “우리 아이도 평소에 이태원에 잘 놀러 가지만, 그날만 안 간 것뿐”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ㄱ씨를 지켜보던 시민 ㄴ씨도 “우리 딸도 이태원에 갈 뻔했는데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바람에 못 갔다”고 동조했다.

이태원 참사 때 국가는 없었다고 비판했다. ㄱ씨는 “이태원 참사 장소에 경찰들이 한두 명만 있었어도 저렇게 죽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서울 은평구에서 온 중년의 시민 ㄷ씨는 분향소에서 희생자들의 영정을 찬찬히 살피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 때 국가는 없었다”며 “참사 희생자 한명 한명이 소중한데, 꽃 피우지도 못하고 가 버렸다”며 애도했다.

서울시는 이날 오후 늦게 두 번째 계고장을 유가족들에게 보냈다. 고 이지영씨의 아버지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살아 있는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지만 죽어 나간 아이들을 지키겠다”며 “계고장을 수천장 보내도 끝까지 지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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