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지난달 SBS와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 대장동 사건의 핵심인물로 알려진, 머니투데이 법조팀장을 지낸 김만배가 타 언론사 간부들에게 수억 원대의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폭로됐다. 김만배는 이들 이외에도 수십 명의 기자들에게 골프접대를 하면서 한 사람당 100만원에서 수백만 원을 건넸다고 한다. 언론사들은 김만배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기자가 어느 언론사 소속인지는 언급했으나 기자 이름은 익명 처리했다. 한겨레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개인정보 보호인가 진실은폐인가?

극우 가로세로연구소 유튜브가 이 숨겨진 진실을 폭로했다. 한겨레 석진환 기자가 6억원, 한국일보 김정곤 기자가 1억원, 중앙일보 조강수 기자가 9천만원, 채널A 배혜림 기자가 명품구두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한겨레 석진환 기자가 받은 돈은 6억원이 아니라 9억원이라고 하며, 차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차용증도 없었다고 한다. 강남에 있는 아파트를 분양받는 데 들어가는 돈이었다고 한다. 석진환 기자는 한겨레 법조팀장이었고 편집국 부국장직을 맡은 핵심간부였다. 이에 한겨레는 석진환 기자를 해고하고, 독자·주주·국민들에게 사과문을 냈다. 김현대 대표이사와 류이근 편집국장이 사퇴하며, 진상조사위원회도 사내외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필자는 석진환 기자의 비리가 갖는 무게에 대해 진보세력과 노동운동 안에서 문제의식이 부족한 데 문제의식을 가진다. 한겨레가 어떤 곳인가? 독재에 저항한 해직 언론인들이 주축이 돼 1988년 5월 창간한, 국민주 형태의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는 신문사다. 창간과 함께 ‘촌지거부운동’ 등 언론계 자정을 이끈 언론이다. 한겨레는 일반적인 언론사가 아니라 언론을 통해 사회를 변혁하려는 사회운동체였다. 많은 해직 기자들이 낮은 보수에도 그곳을 택했고, 자본과 권력에 굴하지 않는 참 언론임을 자랑스러워했다. 지금도 홈페이지에는 ‘세상을 바꾸는 벗’이라고 광고하고 있다.

이런 한겨레에서 기자가 타 언론사 동료 기자와 거액의 금전거래를 했다는 것은 도덕적 파산 사태다. 말단 기자도 아니고 전직 법조팀장에다 편집국 간부 자리에 있는 기자가 저지른 일이다. 더구나 편집국의 다른 간부도 이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다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것은 석진환 기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한겨레는 처음부터 이 사실의 중요성을 축소하는 쪽으로 접근했다. “한겨레신문 편집국 간부 한 명은 2019년 당시 기자였던 김만배씨와 금전거래를 했습니다. 그는 ‘6억원을 빌렸지만 현재 2억여원을 변제한 상태이며 나머지도 갚겠다는 의사를 김씨에게 전달했다’고 회사에 밝혔습니다. … 한겨레 신문사는 5일 오후 이번 사건을 인지한 직후 그를 해당 직무에서 배제했습니다.”

한겨레에서 기자를 채용할 때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가치 기준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신임기자를 선발하는 데만 아니라 간부로 선임하는 데도 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한겨레는 사회운동체가 아니지만 진보적이기는 한가? 한겨레의 논조는 더 이상 사회진보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한겨레에서 경제위기는 어떻게 보도되고 있는지 보자. 사설·오피니언에서나 보도기사에서나 경제위기는 축소 보도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겨레에서도 스태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최소한 그 1년 전부터 부동산 가격을 비롯해 물가가 급등하고 있었다. 미국 주류 언론이 그것을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이름 붙여 보도하지 않았을 뿐이다. 한겨레는 미국 주류 언론의 보도를 앵무새처럼 뒤따랐다.

그뿐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여러 학자나 경제연구기관에서 2023년 세계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올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다. 그러나 한겨레에는 그런 비관적 전망에 대한 보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비관론자들이 전망하는 퍼펙트 스톰이 현실화되지 않을 수도 있고, 친자본 연구기관이나 언론이 이윤축적의 어려움을 노동에 전가하기 위해 위기를 과장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변호를 직업으로 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조차 많은 수가 퍼펙트 스톰을 예고하고 있을 때, 그 위험을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본주의가 큰 문제 없이 잘 굴러 가고 있다는 낙관적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가 내놓는 경제위기 대안은 더욱 문제적이다. 한겨레의 경제분석은 케인스주의경제학에 입각해 있다.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한 해답을 뉴딜정책 같은 데서 구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당론과 거의 일치한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자 박복영 교수나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의 칼럼이 단골로 실린다. 이 교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에도 재정확장을 주문한다. 이윤율이 저하된 상태에서, 한계기업이 무수한 상태에서, 금리를 낮추고 재정을 확장하면 경기는 회복되지 않고 물가만 앙등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난다. 지금 바로 그런 원인으로 물가 폭등해 노동자·서민이 아우성인데, 재정을 풀어야 한다는 처방전을 발부한다. 그 근거로 고금리와 재정긴축을 하면 경기가 위축돼 고용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긴축을 하면 고용한파요 재정을 확장하면 물가폭등이다. 현 체제 아래서는 이리해도 저리해도 민생파탄이다.

그런데 한겨레에서는 사회주의가 경제위기의 대안이라는 글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거기까지는 못 가더라도, 경제계획을 도입하고 지대추구적 천민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해야 한다는 글도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해서 87년 체제는 마감되고 있다. 혁명적·변혁적이었던 사회운동은 식민지적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는 보수적 사회운동으로 전환했다. 언론운동도 마찬가지다. 석진환 기자의 도덕적 타락은 한겨레 정치적 타락의 동전의 이면이라 할 것이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