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우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

1. 지난 4일은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피디의 세 번째 기일이었다. 전날에는 이 피디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과 재방방지대책 마련하기 위해 그간 함께 투쟁했던 분들과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에서 별도의 추모제를 가졌다. 또 3주기 추모제에 맞춰 이재학 피디를 추억하고 그 뜻을 기리는 추모집 <안녕, 재피(Hi JP, Bye JP)-방송노동자 이재학 피디와 방송현장 이야기>를 발간해 북 콘서트도 진행했다. 추모집에는 이재학 피디의 동료, 가족, 방송 비정규 노동자, 함께 투쟁했던 대책위 관계자 등의 글과 어머님의 일기, 이재학 피디가 소송 도중 청주방송 구성원들에게 보내려고 작성했지만 끝내 붙이지 못한 편지 등을 담았다.

2. 지난 1월12일 고 이재학 피디 진상조사위원회는 위원회가 사측에 제시한 요구안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자리를 가졌다. 진상조사위는 이재학 피디의 죽음은 개인의 일탈행위가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14년 이상 노동자로 근무하면서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 점, 14년 동안 일한 자신의 일터에서 허망할 정도로 부당하게 해고된 점, 그 이후 일련의 소송 과정에서 사측 관계자들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존재 자체가 철저히 부정된 결과라고 봤다.

또한 진상조사위는 청주방송의 왜곡된 고용구조를 바로잡고자 철저한 진상조사를 거쳐 여러 위법·부당한 고용형태와 노동조건 등의 실상을 드러냈다. 이재학 피디 사망의 근본 원인을 해소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를 바탕으로 위원회는 2020년 6월 이행요구안을 마련했고, 이후 전국언론노조, 고 이재학 피디 대책위, 유가족, 청주방송 4자가 그 내용을 이행하기로 합의까지 했다. 또 진상조사위는 2023년 1월까지 최소 5차례에 걸쳐 그 이행상황 등을 점검하기로 했고, 그 마지막 점검회의를 1월12일 진행한 것이다.

그간 합의 이행을 통해 고 이재학 피디의 명예회복, 공식사과와 책임자 처벌 등이 이뤄졌다. 또한 청주방송 비정규 노동자들이 상당수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작가 직군은 표준계약서를 작성하고 급여도 세분화되고 상향됐다.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간접고용에서 직접고용(촉탁직)으로 전환했고, 파견직이었던 CG 직군도 직접고용됐다. 행정·운전 등 직군의 노동자들도 노동조건이 개선됐다. 나아가 비정규 노동자의 고용 등 운영방안 관련 매뉴얼도 작성됐고, 직장내 괴롭힘·성희롱 등에 대한 예방대책도 일부 강구됐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개선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달 말 다시 한번 최종 이행검검을 하기로 했다. 이때까지 청주방송이 이행을 완료하지 못한다면 그 모든 책임은 청주방송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둔다.

3. 지난 3년, 이재학 피디 관련 사안과 방송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나름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지금 그 싸움의 성과들은 공고하지 못하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청주방송을 포함해 방송 비정규 노동자들이 주체로 나설 수 있는 환경과 구조를 얼마나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당연한 명제지만 주체가 스스로 나서지 못하는 싸움은 그 한계가 명백하다. 대내외적 연대와 지원도 주체의 움직임이 전제되지 않으면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이러한 명제에서 출발했어야 할 싸움이 당시의 절박함과 긴박함에 묻혀 간과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 우리가 이재학 피디를 추모하는 방식은 그를 그리워하는 것을 넘어서 그의 뜻을 현재의 상황에서 되살려 나가는 것, 현재 어려움을 겪는 방송 비정규 노동자들이 굳건히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연대 방안을 구축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 당장 싸우고 있는 방송 비정규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그것이 이재학 피디를 추모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4. 사회적으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을 둘러싼 싸움이 치열하다. 노조법 2·3조 개정의 본질은 ‘헌법상 노동 3권의 실질화’다. 노동 3권은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공기·생명과 같은 것이다. 노동운동의 역사, 노동법의 역사가 이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노동 3권이 부재한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사용자에게 최소한의 자기 요구조차 제대로 얘기하지 못한다. 숨쉬기조차 어려운 현장으로 전락한다. 그런데 작금의 노동자들에게 노동 3권은 헌법전에 문자로만 존재할 뿐 현실에는 부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 3권 본래의 의미를 찾는 것. 그것이 이번 노조법 2·3조 개정의 본질이자 핵심이다.

이미 법개정의 현실적·법리적 근거는 충분하다. 국회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재계와 보수진영의 억지 논리에 밀려 매우 불충분·불분명한 법개정을 한다면 개정을 하고도 거센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특히 노조법 2조 ‘사용자’ 정의와 관련해 이미 법원의 판결 등이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재계와 보수진영의 요구에 떠밀려 후퇴하는 절충안을 마련한다면 노동‘개악’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점을 국회는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이재학이 프리랜서가 아닌 ‘노동자’라는 이름을 찾지 못해 절절한 억울함을 호소하며 세상을 등졌다. 이렇듯 ‘노동 3권’이 본래의 의미로 이해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이재학은 어디에나 넘쳐 나고 있다. ‘노동 3권’의 본래적 의미를 찾는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이야말로 지금 시점에서 ‘노동자’ 이재학의 뜻을 기리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이번에는 반드시 개정하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