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정명(32·가명)씨는 사회생활 5년차지만 저축을 많이 하지 못했다. 졸업 후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 대출 2천600여만원의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수년이 걸린 탓이다. 가구원의 소득 등을 고려해 대학 장학금을 지급하는 제도로 2012년부터 시행된 국가장학금을 어느 정도 받긴 했지만 등록금과 생활비를 모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학 입학 뒤 가족의 지원 없이 경제적으로 독립한 김씨는 “쌓여 가는 빚을 보며 수천만원에 짓눌릴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 왔다. 국가장학금을 받지 못한 윗 세대는 훨씬 높은 이자를 감당했기 때문에 그나마 우리 또래는 운이 좋은 편”이라며 “좋은 직장을 위해서는 대학 졸업이 필수인 사회에서 지원 정책이 너무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노동·시민단체들이 “정부가 학자금 부채를 ‘사회적 부채’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탕감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학자금 부채가 개인적 필요가 아니라 사회적 필요로 만들어진 빚이라는 관점에서 비롯했다.

학자금부채탕감운동본부(준)의 사회적부채감사위원회는 5일 ‘사회적 부채 감사보고서’를 발표하고 이같이 밝혔다. 운동본부에는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서울민중행동 등이 참가하고 있다. 사회적부채감사위는 배병인 국민대 교수(정치외교학)를 위원장으로 지난해 10월 출범했다.

“고등교육 보편화로 사회 큰 혜택,
그럼에도 비용은 개인에 전가”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 대학 진학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위지만 대학교육의 84%를 담당하는 사립대학 등록금은 일곱 번째로 높다.

배병인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대학교육은 보편교육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은 온전히 개인이 부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국가가 고등교육을 책임지는 대신 고등교육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을 조달할 수 있도록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 왔고, 값비싼 등록금을 개인의 미래 부채로 전환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학자금 대출 사업을 하는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2014년 학자금 대출 공급 규모는 3조6천억원으로 최대치에 육박한 뒤 2021년에는 1조7천억원으로 감소했다. 정부가 장학금 예산을 늘렸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2020년까지 누적된 학자금·생활비 대출의 총액은 36조4천317억원에 달한다. 청년들이 연평균 2조원에 달하는 빚을 져 온 셈이다.

배 교수는 “대학교육을 받은 개인에게 돌아가는 혜택보다 더 큰 혜택을 받는 것은 우리 사회”라며 “고등교육을 받은 양질의 노동력만큼 경제적으로 생산적인 요소는 없다. 고등교육 보편화로 우리 사회가 엄청난 혜택을 받아왔음에도 혜택에 비례하는 책임을 지지 않고 개인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해이’”라고 꼬집었다. 학자금 부채를 사회적 부채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최소한의 사회보장 정책 필요”

사회적부채감사위는 학자금 부채가 ‘고등교육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으로 정부가 빚 탕감에 나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학자금 부채가 우리 사회 불평등을 키울 뿐 아니라 청년층의 이자 부담 문제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상위 5%(순자산 14억1천318만원 이상)의 연간 교육비 지출액은 평균 775만원 정도다. 상위 20%에 해당하는 가구의 3배다.

왕의조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차장은 “부채의 불평등은 노동의 불평등과 소득의 불평등으로 연결된다”며 “서울대 학생 10명 중 7명은 중산층 이상이라는 조사 결과에서 보듯 한국의 교육 정책은 극심화 양극화로도 이어져 사회는 불평등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통계청의 지난해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9세 이하 청년 가구주는 평균 5천14만원의 부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년 대비 41.2%나 증가한 수치다.

한영섭 세상을 바꾸는 금융연구소장은 “29세 이하 가구주의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49.3%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고 기준금리의 급격한 상승에 따라 청년층의 상환 부담이 커지고 소득 증가율은 타 연령대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며 “최소한의 사회보장 정책으로 학자금 부채 탕감 정책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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