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

2월 기준 올해 서른 살이 되는 나는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1개월이다. 아, 군인 크레디트가 있어 6개월 정도 가입기간이 보장돼 17개월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활동을 시작해 지난 4년간은 30만원 정도의 활동비 지원을 받았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프리랜서가 돼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는데, 내 소득은 월별로 들쭉날쭉한 데다 절대적으로 낮았다. 그렇기에 국민연금 가입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지난해 4월 처음으로 4대 보험을 가입하고 일하는 시민으로서 사회와 계약을 맺었다. 처음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했지만 2024년이면 나의 임금소득도 끝이 난다. 그 이후 나는 다시 프리랜서 활동가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9%를 내야 하는 지역가입자가 되거나, 지금 당장의 부담 때문에 미래를 저당잡고 연금을 가입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는 ‘활동가'라는 특수성을 담지 않는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사업소득세 납부자는 7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10여년 새 2배 이상이 증가했다. 이 700만명 중 지역가입자로 국민연금을 가입하고 있는 이들은 374만명으로 절반은 국민연금 가입을 하고 있지 않다. 이들에게 얼마 전 발표된 ‘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시산’은 어떻게 와닿을까. 예측대로면 현재 국민연금 제도를 지속하면 2055년에는 완전히 기금이 고갈된다. 지난 4차 추계보다 수지적자는 1년, 기금소진은 2년 앞당겨졌다고 한다.

‘국가가 보장하는 최고의 재테크. 적게 내고 많이 받아가세요.’ 2020년 국민연금 ‘추후납부’ 광풍이 불었다. 한 번에 1억원 이상 고액을 국민연금으로 내면서 연금 수급액을 크게 늘리는 ‘국민연금 재테크’가 유행한 것이다. 그리고 2021년 소득이 없어도 국민연금을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임의가입’이 59% 증가했다. 가입기간이 늘어나면 수급금액이 늘어나기에 자녀들의 노후를 위해 자녀가 만 18세가 되면 국민연금을 가입시키는 것이다. 실제 현재 납입 금액과 납입기간에 따라 연금액이 산정되고, 사적연금과 달리 현재 납부액에 대해 30~40년 뒤 물가상승률, 경제성장률 등을 고려해 재평가를 통해 지급하기에 더 많은 돈을 수급하게 된다. ‘내부노동시장’에서 장기간 안정적으로 연금을 일정액 이상 납입할 수 있는 이들과 자녀의 연금액을 걱정 없이 내어줄 수 있는 이들에게는 이만한 재테크가 없는 셈이다.

‘저출생, 고령화 시대가 도래했다.’ 저출생은 일하는 시민의 숫자가 줄어들어 연금기금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며, ‘고령화’는 연금수급 대상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0.81명.’ 2021년 합계출생률이다. 2021년 출생자가 26만명 정도다. 그런데 현재 곧 연금 수급을 앞두고 있는 1차 베이비붐 세대는 70만명에 달하고, 2차 베이비붐 세대는 100만명에 가깝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노령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는 현재 상태의 보험료를 유지할 경우 미래세대의 노후 보장을 위한 사회지출 부담이 커지는 것이 불가피해진다는 것으로 연금에 대한 불신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며, 현재세대가 미래세대의 노후를 저당잡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늘 재정 불안 논란의 한복판에 있다. 우리 현세대가 미래세대와 비슷한 연금급여를 받으면서도 보험료는 현격히 덜 내고 많이 받는다. 이는 미래세대 부담을 계속해서 가중하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 빠르고 높은 고령화로 미래에는 국민연금 외에도 기초연금·의료비 지출까지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현세대가 자신이 낼 보험료와 받을 급여를 의사결정할 수 있는 제도인 국민연금에서만은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번 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서 우리가 무겁게 인식해야 할 것은 미래에 대한 단순한 전망이 아닌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에 대한 지금 현세대가 수행해야 할 책임이다.

또한 이번 재정계산 결과는 노후소득보장 강화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전해 준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0%를 기준으로 이뤄진다. 이 소득대체율 수준에서도 보험료율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은 적절하지 않다. 앞으로 국민연금의 보장성 강화는 추가 보험료율 인상이 수반되는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 대신 크레디트 확대,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 의무가입기간 확대 등으로 가입기간을 늘리는 실질 소득대체율 확장에 집중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지원이 필수적이다. 이에 우리는 출산·군복무·실업크레디트 등 국민연금 가입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현재 본인이 전액 부담하는 도시지역의 국민연금 보험료도 국가가 일부 지원할 것을 제안하다.

연금제도는 한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주요한 안전망이자 시민의 권리를 규정하는 구체적 계약이다. 특히나 안정성이 떨어지는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연금은 노년 시민의 생계와 자존감을 뒷받침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 시민적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들은 함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국가는 허상의 존재가 아닌 사회구성원들과 구체적인 계약을 맺는 집단이며, 국가의 재정은 사회계약의 구체적 집행을 위한 도구로서 존재한다. 그렇기에 재정 집행은 우리의 권리이자 책임의 영역이다. 그렇기에 이번 연금개혁이 정치적 표계산을 넘어 더 많은 이들이 자기 책임을 이야기하고 사회 연대를 이루는 연금으로 한 걸음 가깝게 가기를 기대한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tjfrla3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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