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28일 강연에서 현재의 한국 정치를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밥도 같이 안 먹고 결혼도 안 하겠다는 ‘정서적 내전 상태’”라며 “그다음 단계로 ‘싹 다 쓸어 없앴으면 좋겠다’는 심리 위에 있던 나치와 파시즘만큼 위험하다”고 우려했다.(경향신문 1월30일자 4면 “활동 재개한 김부겸 ‘한국 정치, 정서적 내전 상태’”)

노무현 팬클럽 수준의 소박한 모임은 명계남과 문성근 같은 이들이 주축이 되면서 적극적 치어리더로 발전했다. 김어준 같은 이들이 합류하면서부터 훌리건으로 변모했다. 노무현·문재인 대통령 같은 팬클럽을 갖추지 못해 안달하던 국민의힘도 박근혜 팬클럽을 시작으로 최근엔 김건희 팬클럽이 훌리건 역할을 톡톡히 한다. 박근혜 팬클럽은 그래도 독재자의 딸이란 비난에 일말의 주춤거림이라도 있었다. 김건희 팬클럽에 이르러선 막가파가 됐다.

최근 취재원 몇몇이 나를 그런 분들이 득실거리는 톡방에 초대했다. 그 방엔 주로 이런 글들이 올라온다. 원문을 그대로 옮기다 보니 거친 표현이 많다. “박지원 이놈이 윤 대통령 탄핵시키라고, 헌재 재판관 놈들한테, 200억원을 줬답니다.” “200억 출처가 이재명 아닐까? 합니다.” 어제는 ‘8조원의 행방’이란 제목의 글도 올라왔다. 문재인 대통령 때 임종석 비서실장이 2017년 중동에 가서 시리아에 있는 북한 주재원들에게 8조원을 전달했다는 거다. 덕분에 북한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 참석하고 정상회담도 여러 번 했다는 거다.

우리 편이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훌리건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이 쏟아내는 섬뜩한 말잔치에 소름이 돋았다. 이런 글에는 늘 앞뒤에 “혼자 보시지 말고, 꼭 50명 이상에게 퍼날라 달라”는 주문이 붙는다.

거대 양당의 훌리건 부대는 서로 닮아 간다. 훌리건 부대는 SNS를 넘어 유튜브 방송과 온라인 매체도 만들어 진화하고 있다. 이에 편승한 주류 언론도 자기 편에게 유리한 기사만 싣는다. ‘유시춘 EBS 이사장 선임 과정 감찰’은 보수언론만 유독 크게 보도하고, ‘긴급조치 1·4호 피해자도 국가 배상 책임’을 물린 대법원 판결 기사는 보수언론엔 눈 씻고 봐도 없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세종시의회 의장이 동성 동료 시의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자 국민의힘은 거품 물고 비판한다. 두 정당의 성인지 감수성은 도긴개긴인데 당사자들만 모른다. 국민은 다 안다.

문재인 정부 때 정치인 출신 한 장관은 파리로 공무 출장 가서는 ‘호텔 방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와인을 사 놓지 않았다’며 수행 공무원들을 잡았단다. 국민 살림살이는 내팽개친 채 잇속만 채우는 거대 양당 정치인들 행태는 이미 구한말 삼정 문란을 닮았다.

훌리건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해온 유시민 작가는 지난달 30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앞으로 병원비 더 들 거야’ 보수정부 뽑았으니 당연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에서도 복지제도가 유난히 빈곤한 한국에서 서민들의 거의 유일한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한 방에 3분의 1이나 깎았던 사람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민주노총은 2007년 7월2일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국민연금 개악저지 집회를 열어 반대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비겁하게도 보험료율은 1%도 올리지 않았다. 종전과 똑같이 내지만 노후에 덜 받는 국민연금을 만들어 버렸다. 물론 당시 한나라당도 개악안에 합의해 줬다. 덕분에 요즘 연금개혁 논의는 더 내고 비슷하게 받는 쪽으로 기울었다. 유 전 장관이 깎은 ‘소득대체율 40%’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먹힌다.

1985년 10월 만기출소를 앞두고 그가 플라스틱 칫솔대를 갈고 또 갈아 감방문 기둥에 새긴 ‘민족 민주 민중 만세!’는 다 어디로 갔을까.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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