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지난해 여름 신축 아파트의 인분 문제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다. 한 입주민이 새로 입주한 자신의 집에 악취가 발생해 하자보수를 신청했는데, 이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해당 아파트의 천장에서 인분이 담긴 비닐봉투가 발견된 사건이었다. 이를 두고 애초 건설노동자들의 몰지각한 행동을 비판하던 여론은, 금새 건설현장에 화장실이 변변히 마련돼 있지 않았다는 믿지 못할 사실로 옮겨 갔다. 먹고, 마시고, 싸는 것이 당연한 인간과 노동자의 생리현상조차 해결 불가능한 건설현장의 작업환경과 실태가 주목되며, 문제 해결 필요성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곧바로 건설노조가 앞장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는 등 스스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 그리고 바로 지난 1월31일 인원수에 비례해 건설현장의 화장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건설근로자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고용노동부가 제출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남성노동자 30명당 1개 이상, 여성노동자 20명당 1개 이상의 화장실(대변기)을 설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동안 관련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건설현장으로부터 300미터 이내에 화장실을 설치하면 법적 요건을 충족했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늦었지만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화장실이 없어 쩔쩔매는 건설노동자들의 고충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인분 문제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직전 참가했던 건설노조 노동안전 담당자 회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건설노조가 혹서기 대비 휴게시설 및 편의시설 실태조사를 진행하던 중 현장에 설치된 간이 소변기가 문제가 됐다. 화장실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겨우 하반신만 가릴 수 있는 3면의 가림막으로 만들어진 남성용 소변기가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일하는 현장에 제공된 편의시설의 하나로 취합됐다. ‘이걸 과연 화장실로 봐야 하는가’라는 설왕설래를 멈추게 한 것은 회의 참가자의 발언이었다. “이렇게라도 설치돼 있으면 그나마 ‘모범사례’인 것이 지금 우리 일터예요”

그뿐 아니라 당시 회의에서는 더 많은 어려움이 확인됐다. 그나마 남성노동자들은 어떻게라도 해결(?)할 수 있지만, 여성노동자들은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현실도 파악됐다. 한 가지 사례로 여성노동자들이 원청 사무실 직원들의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하자, 원청이 굳게 잠금장치를 해 놓고는 자신들만 이용하는 곳이라며 출입을 막았다는 얘기에는 분통이 터지고, 화도 났다.

이런 노동실태는 해당 현장에서 일하는 당사자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개인의 경험으로 존재해서는 드러나기도, 사회적으로 해결방안을 찾기도 어려운 일들이다. 그나마 노동자들이 개인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들을, 노조로 뭉치고 단결하면서 집단의 문제로 하나씩 요구하며 해결방안을 찾고 있는 중이다.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을 유지·증진해야 하는 것이 사업주의 의무다. 이를 이행을 강제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단결하고, 외쳐야 하는 요구가 화장실 문제뿐 아니라 무수히 차고 넘치는 것이 대한민국 일터의 현주소다.

그러나 현 정부는 노조 적대시 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교육·연금·노동개혁을 완수하겠다고 표명하며 그중 핵심을 노동개혁으로 꼽았다. 동시에 공직·노조·기업 3대 부패 척결을 선포하며 연일 노조 때리기에 앞장서고 있는 모양새다. 회계투명성 문제를 트집 잡고, 공정거래위원회를 앞세워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와 건설노조에 전방위적 압박을 해 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노조 적대시 정책은 노동에 대한 공세로 보수 유권자를 결집해 지지율 반등을 꾀하는 것이라는 점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노조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으며, 이해당사자들 간의 숙고가 필요한 사회적 의제들조차 논의를 차단한 채, 전문가를 앞세워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 행태는 더 큰 저항만을 불러올 뿐이다.

특히 노조에 대한 혐오는 산재예방에 있어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연말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핵심으로 위험성평가의 내실화를 그 중심에 두고 있다. 위험성평가가 본래의 취지에 맞게 현장에 정착하고,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일터의 유해·위험을 노동자들이 스스로 통제·제어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핵심에 있는 노조가 제 역할·기능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개인 노동자로서는 말하기 어려운 문제를, 노조라는 울타리를 통해 집단적으로 말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는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그런 경험이 풍부해질수록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한층 성숙해진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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