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훈 직장갑질119 교육센터장

직장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조직 내부에 신고했던 청년노동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족에 따르면 불공정한 조사 과정과 동료들의 침묵에 큰 실망과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고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신고했지만 조직은 청년노동자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 2년 전 신임 공무원이 안타까운 선택을 했던 사건에서도 그랬다. 제발 살려 달라고 청와대 게시판에도 글을 올렸지만 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벌써 4년째 접어들고 있다. 현장에서 큰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직장인들은 자기 조직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직장갑질119가 조사에 따르면 괴롭힘을 당한 경우 조직 내에서 신고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27%에 불과했다. 73%의 직장인들이 조직 내에서 “해결되거나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라는 등의 이유로 상담과 신고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 조직이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을 품고 있는 것이다. 직장갑질 119에 들어온 상담 중에는 조직 내 괴롭힘 사건 처리 담당자의 갑질과 괴롭힘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업 내부에 신고했지만 제대로 조사되고 있지 않아서 더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어서 나쁜 생각이 들지 않도록 도와 달라는 호소도 있었다. “인권 담당자가 인권 침해를 한다” “담당자가 시간을 끌고 행위자에게 편중된 조사를 한다” 등 조사 과정의 객관성 결여에 대한 상담이 많아지고 있다. 기업 내부 담당자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제대로 된 훈련과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매우 민감한 사건을 조사하고 처리하다 보면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일이 많다. 고용노동부 매뉴얼이 있지만 민감한 부분에 대한 구체적 대응 요령을 알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직장내 괴롭힘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괴롭힘 사건에 대한 기업의 대응 능력의 차이는 실무 담당자의 역량과 마인드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괴롭힘 사건을 진행하고 조사하고 심의하는 것은 인권 침해 문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매우 전문적인 분야로 인식돼야 한다. 단순히 법을 적용하는 것을 넘어서는 기민한 판단력과 대응력이 요구되는 분야다. 그러나 교육과 훈련 기회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기업 생존과 발전을 가늠하는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지만, 인사관리 교과서 어디에서도 노동자의 침해된 인권을 올바르게 보호하는 방법을 서술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2021년 3개의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을 비준했다. 이제 기업 내 인권 보장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준수해야 한다. 한국 기업문화의 큰 변화가 필요하지만 기업·학계·연구자들의 준비는 너무 미흡하다.

올해 새해 벽두부터 직장내 괴롭힘 사건으로 실형이 선고되고 법정구속 되는 일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이제 노동자 인권보장 역량 강화는 기업의 리스크 관리 문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최근 민사소송에서 괴롭힘 가해자와 예방 의무를 소홀히 한 회사에게 위자료가 1천만~3천만원까지 인정되고 있다. 노동법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1945년 해방 이후 노동법 중요한 주제는 임금·해고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법은 새로운 목표가 추가됐다. 2세대 패러다임인 노동자의 인권(안전과 존엄과 반차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등 노동자에게 안전한 업무환경 제공 의무가 강화되고 있고 노동과 관련해 주된 관심사가 되고 있다.

ILO 190호 협약에서 밝힌 직장내 괴롭힘은 조직 갈등이 아니다. 명백한 노동자 인권 침해이자 노동자 학대(ABUES) 행위다. 세계적 공급망 체인에서 한국 기업의 위치 변화는 한국 노동제도 변화의 패러다임 변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직장내 괴롭힘 사건의 인권 기반 접근은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잡았다. 유럽연합의 주요 국가들은 다국적 기업의 인권보호 의무법을 제정하고 자국에 진출한 한국의 주요 공기업과 대기업을 감시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노동자 인권보호는 이제 기업 경쟁력이며 국가 경쟁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기업 내 괴롭힘 사건 담당자의 실무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기업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한국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다.

기업·정부·시민사회가 나서서 직장에서 일하는 우리 노동자들의 안전과 존엄을 지키는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것은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 언론의 관심이 필요하다. 기업은 전문가를 양성하고 교육·훈련을 위한 자발적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