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엠 물류센터의 협력업체 소송 이겼어요.” 한국지엠 창원부품물류센터에서 일하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원청 한국지엠을 상대로 불법파견 여부를 상담하고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맡겨서 진행해 왔다. 그들은 생산공정인 아닌 외부 부품물류센터에서 자동차 수리를 위한 부품의 입고·저장·피킹(Picking)·패킹(Packing)·출고 등 업무에 종사했는데, 원청 한국지엠이 센터를 폐쇄하면서 해고됐던 하청노동자였다. 마침내 지난 19일 1심 판결이 선고됐다고 사무국장이 전화로 알렸다.

벌써 3년 전이었나. 상담하고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 2020년 3월이었다. 그동안 우리 사무실에서 담당 변호사가 변경되기도 했다. 1년 전부터는 고재환 변호사가 인천지법을 오가며 변론을 했다. 이번 판결에 관한 뉴스를 찾아보니 그는 이번 판결을 이렇게 평가했다. “생산공정에 부품을 조달하는 물류가 아닌 회사 외부에 부품을 판매하는 물류센터에서 근무한 노동자가 불법파견 소송을 제기해 인정받은 사례라 의미가 있다. 현장에는 한국지엠이 작성한 표준작업절차서·작업표준서 등이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주요한 근거로 인정된 것으로 보인다.”(2023년 1월20일 매일노동뉴스). 그렇다. 생산공정이 아닌 회사 외부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판결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법원이 이렇게 판결했던 것은 당연히 작업표준서 등 파견근로를 인정할 증거 자료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원청의 물류업무를 해 왔던 것이니,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판결이다. 그런데도 대단하게 의미 있는 판결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나라에서 협력업체 사내하청 노동자들이다. 원청을 상대로 해서 불법파견이 인정돼 근로자지위확인 판결을 받아 낸다는 것이 여간 만만찮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 회사의 경우 사내 생산공정이 아닌 외부 물류공정 등의 경우에는 거기서 일하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파견근로로 인정받는 사례를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 판결은 담당 변호사가 말한 대로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가 말한 이번 판결에 대한 평가는 생산공정이 아닌 외부 물류업무에서도 ‘법대로’ 파견근로라고 인정했다는 것이다.

2. 허원 금속노조 한국지엠부품물류비정규직지회장은 “자동차 대공장 안에서 일하는 하청업체는 다 불법이라고 봐야 한다”며 “어떤 하청업체라도 대공장의 시스템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한국지엠이 불법파견 사실을 인정하고, 더 이상 위법행위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고 20일 매일노동뉴스는 보도했다. 자동차 회사에서는 원청 시스템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원청의 작업 지시에 따라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니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는 취지고, 특히 원청 한국지엠은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그러한 위법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법대로’ 인정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법대로’, 즉 파견법이 정한 대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야 법치주의 나라에서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도대체 당연하지 않다. 그와 조합원들은 원청이 자신들이 일하는 사업장을 폐쇄하면서 더는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로 일할 수 없게 돼서 원청 한국지엠을 상대로 불법파견 소송을 제기했다. 그들이 보기에는 자신들을 포함해서 자동차 회사에서 사내하청은 계약만 원·하청의 도급계약을 체결한 것이지 실제로는 모두가 파견법을 위반한 불법파견이다. 그런 그들에게는 ‘법대로’ 원청이 이를 인정하고 파견법 위반행위를 하지 말기를 바라는 것인데 어찌 된 일인지 이 나라에서 원청 자본은 불법파견을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회장은 이와 같이 말하고 강조했던 것이다. 법률가로서 내가 보기에도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3. 화물연대 파업 이후 윤석열 정부는 노사관계에서 법치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노사법치주의’라는 말까지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면서 ‘법대로’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27일 매일노동뉴스에 따르면, 법무부는 26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업무보고에서 “국가 경제와 국민 불편을 볼모로 한 불법 집단행동은 ‘불법과 비타협’ 원칙에 따라 배후까지 엄단하겠다”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노조의 집단행동에 법대로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올 상반기 불법 집단 행위자에 대한 사건처리 기준을 강화해 이익집단의 조직적 불법행위에 ‘불법과 비타협’ 원칙에 따라 배후까지 엄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보도자료에서 ‘이익집단의 조직적 불법행위’ 예시로 “법 원칙 앞에 화물연대 총파업 철회”라는 제목의 기사와 윤석열 대통령이 “폭력·불법 세력과는 타협 없다”며 노동개혁을 강조한 기사를 첨부했다. 이날 업무보고를 받은 윤 대통령은 “경제를 뒷받침하는 법무행정”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한동훈 장관에게 “국제화란 글로벌 스탠더드에 우리 제도를 맞춰야 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투자가 어렵다”며 “외투기업이 우리 기업의 지분을 취득하고 국내에 투자를 하는 데에 지장이 되는 제도들은 발전된 나라들을 보며 바꿔 달라”고 주문했다. 이렇게 오늘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노조의 불법행위에 타협 없이 ‘법대로’를 강조하고, 이에 따라 법무부 장관은 노조의 불법 집단행동에 강경대응하겠다고 보고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글로벌 스탠더드까지 주문하고 있다. 대통령이 주문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으니 알 수가 없는데, 노사관계제도가 외투기업 등 기업이 활동하기 좋게 구축돼야 한다고 말한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틈만 나면 말했던 것이 자유였다. 윤석열 대통령 어록에서 단 한 단어를 찾아보라면 나는 자유라고 뽑을 것이다. 그만큼 지겹게 들었던 대통령의 말이었다. 이 세상에서 자유란 본래 권력에 대한 말이다. 대한민국헌법에서 자유란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이 세상은 왕·귀족 등의 권력으로부터 인민의 자유를 쟁취하고서 그것을 천부의 인권, 기본권으로 헌법전에 선언하고서 태어났다.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자유, 노동에 대한 자본의 자유는 이런 자유가 아니다. 이에 대해 국가권력에 대한 노동자의 자유는 이런 자유다. 그러니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할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이런 자유여야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 나라에서 자유란 말이 수상하다. 기업 활동의 자유, 자본을 위해서 주되게 자유란 말을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자유는 억압적이다. 노동자·인민에 대해서 하지 말라고 하는 말로 자꾸 들리고 있다. 폭력행위 등 형사범죄를 저질렀다면 그에 따라 처벌하면 되는데 그걸 하기 위해서 강경대응을 강조하면서 기업의 자유를 말할 일이 아닌데도 이 나라에서 권력은 자유를 말하고 있으니 자유의 억압을 자유로 말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고 나는 자유가 수상한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자유의 억압이 아니다. 노사관계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등 국제노동기준을 준수하면서 노동기본권 같은 노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나라는 결사의 자유 등 노조활동을 위한 노동자의 자유에 관한 몇몇 ILO 기본협약을 비준했음에도 여전히 노사관계 법·제도는 글러벌 스탠더드와는 거리가 멀다. 노동자가 노동조합 등 단결체를 조직해서 교섭·쟁의 등 활동할 자유는 여전히 광범위하게 제한·금지된 채 보장되고 있지 못하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부당노동행위 등 몇 조문을 빼고는 온통 노동조합의 조직 활동을 규제하는 것투성이다. 파업 등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주체, 목적, 시기와 절차, 수단과 방법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제한과 금지로 법·제도를 채워 놓았다. 이에 따라 불법이 아닌 파업 등 노조활동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고 예외적으로 이러한 법적 규제를 준수하는 경우에만 허용되는 지경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러한 법적 규제가 형사처벌를 통해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단결의 자유, 단순히 일하지 않는 파업조차도 징역형 등으로 국가가 형사처벌하는 제도를 두고 있는 것인데, 이런 노사관계 법·제도를 두고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말할 순 없다. 노사관계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는 국제노동기준을 준수하도록 노동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이렇게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법·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폐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오늘 이 나라에서 문제는 노동의 자유가 많이 보장돼서가 아니고, 오히려 그 자유가 적게 보장돼서다. 이것은 기업의 자유를 위해서 노동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데 권력이 노조 불법행위에 강경대응하는 걸 이용하는 것에서도 알 수가 있다. 폭력행위처럼 일부 형법상 범죄행위가 있다면 폭력죄 등으로 형사처벌하면 그만이지, 노조활동의 자유를 규제할 일이 아닌데 자꾸만 자유를 말하면서 권력은 노동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으니 이 나라에서 자유란 말은 자유라고 할 수가 없는 지경이 돼 버렸다. 그리고 노동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법대로’, 노사법치주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 나라 사업장들의 사내하청을 파견법 위반으로 엄정하게 법집행하는 것은 오늘도 이뤄지지 않은 채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서 사용자·기업의 자유에 대한 억압을 법이 규정한 것이면 그 법대로 집행이 이뤄져야 마땅하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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