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엄마 집은 추웠다. 여태 철없는 막내는 춥다 춥다 노래를 불렀고, 더 늙은 엄마는 안 춥다 괜찮다 대꾸했다. 등유 한 드럼에 얼만지 아느냐며 한숨 쉬었다. 마루 한구석 전기장판 깔린 자리에 다 큰 자식 손주들이 오밀조밀 모여 앉아 귤을 까먹었다. 아궁이에 나무 때는 온돌방이 하나 있어 종종 등을 지질 수 있었다. 참기름은 한 방울만 넣어도 충분하다고, 옛날부터 엄마 잔소리가 대단했다. 많이 넣어도 맛있다는 걸 다 커서 알았다. 나는 온 집에 불을 켜고 다녔고, 엄마는 따라다니면서 불을 껐다. 엄마 매서운 손바닥이 날아와 내 등짝에 불이 나곤 했다. 사과 껍질 두껍게 깎을 때도 그랬다. 여전하다. 아끼는 건 한 평생 엄마 몸에 깊게 배어 당신 얼굴 주름처럼 선명했다. 손금 같은 것이었다. 설 뒤로 서울은 추웠다. 사거리 잘 보이는 곳마다 민생을 챙기겠다는 현수막이 된바람에 펄럭거렸다. 한파가 몰려오고 무인기가 날아들고 난방비 폭탄이 떨어지는 이 겨울, 빌딩 청소노동자 바쁜 움직임이 달라질 리 없다. 새벽 만원버스 첫차 시간을 당겨 달라는 그 사정에도 달라진 게 없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걸 잘 아는 사람들이 공짜 노동을 총리에게 청하는 그 이유 말이다. 민생을 챙기겠다고, 복 많이 받으라고, 현수막의 말들이 그저 따뜻하다. 난방비 걱정에 보일러 돌리는 데에 벌벌 떠는 사람들 집이 내내 춥다. 아끼고 아껴 가며 꾸역꾸역 견디는 데 도가 튼 사람들이지만, 부글부글 뜨겁게 끓어오르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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