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인혜 안전관리 노동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꼭 1년이다. 그간 산업재해에 대한 처벌 수위가 약했고, 산재가 끊임없이 되풀이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고, 솜방망이식 처벌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책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

법이 시행됐음에도 산재 사망자는 눈에 띄는 수준으로 줄어들지 못했다. 2022년 산재 사망자 통계를 보면 건설업에서 약간 줄어들고, 제조업에선 오히려 늘어났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 중대재해처벌법 무용론을 설파하고 있다. 기업 활동을 방해하는 잘못된 규제라는 식의 기사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당연히 처벌 수위를 대폭 낮춰야 한다는 주장을 싣거나, 법을 폐기해야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일부 언론이 데이터 몇 개 대충 보고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의 글, ‘야마’를 잡기 위해 짜깁기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현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다루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될 즈음부터 현장엔 큰 변화가 있었다. 안전관리 개선안을 내놓는 기업이 많았다. 하청업체 대표자들과 안전관리 담당부서를 필두로 안전관리 개선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당장 전 직장이 그런 케이스였다. 원청사는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을 위해 경험 많은 안전관리자를 추가 고용했다. 위험성평가표를 전면 개정하고, HSE(보건·안전·환경) 관련 규정을 대부분 뜯어고쳤다. 솔직히 처음엔 불만이 있었다. 위험성 평가표가 전면 개정되면서 새 양식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원청사의 안전관리를 보조하는 안전감시단 업체도 새로 바뀌었다. 전 회사보다 더 규모가 있는 회사였다. 당연히 일 잘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전보다 더 꼼꼼하게 현장을 확인했다. 매일 안전감시단에서 지적 개선 사항과 관련한 전화를 받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작업자들 이끌고 지적 사항을 고치기도 했다.

국내 최대 석유화학 공단이 위치한 울산의 한 석유화학기업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 산재 사망사고가 났다. 위험물을 취급하는 공정에서 작업자가 질식사한 것이다. 이 사고를 기점으로 해당 공장은 안전관리자를 대규모 채용했다. 안전관리 수준을 싹 갈아엎었다. HSE전담 부서가 체계를 갖춰 운영되기 시작했다.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공장은 울산 석유화학공단에서 가장 안전한 사업장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안전관리자 처우가 개선됐다. 중요성 역시 커졌다. 한때 저연차 직원한테 맡기던 일이 안전관리였다. 안전관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관리자들은 일부 대기업이나 석유화학업종이 아닌 이상 대규모 프로젝트성 공사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것도 대부분 계약직, 즉 비정규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여건이 되는 기업들은 모두 정규직 안전관리자를 채용하고, HSE 부서를 강화하고 있다. 적어도 울산에선 전문 안전관리자를 구하려는 기업이 늘었다. 당연히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업체도 늘었다. 그만큼 임금도 올랐다.

현장은 이렇다. 법이 시행된 지 1년 만에 산업현장의 HSE 관리 인력이나 수준이 급격히 개선됐다.

물론 중대재해처벌법에서 모호한 영역이 있다. 조문이 모호해 대응 서류를 여러 가지 준비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경우의 수를 따져 가며 서류 만들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현장을 점검하는 게 산재예방에 중요한데도 말이다.

산재는 중소사업장에서 많이 발생한다. 중소사업장은 구조적 한계가 있다. 매출 수준 때문에 추가 고용이 어렵다. 산재 대응을 할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고질적인 문제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제대로 짚지 못했다. 대신 처벌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단순히 처벌 수위를 이야기하거나 법이 유용한지, 무용한지 따지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안전관리자와 보건관리자가 충분히 육성되는 환경을 조성하고, 기업별 HSE 체계를 정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와 동시에 산재 대응에 취약한 중소사업장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국가의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

일부 언론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주년 기사들이 안타깝다. 제대로 된 대안조차 내놓지 못하면서 일부 기업인들의 불평만 끼워 맞추고 있다. 산재 이슈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소모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한 지 1년밖에 안 됐다. 벌써부터 쏟아져 나오는 중대재해처벌법 무용론을 주장하는 기사가 보기 좋지 않다. 이제 막 취업한 수습기자한테 심층 기획기사나, 특종을 바라는 상황과 똑같다. 수습기자가 안착하려면 4~5년의 시간이 걸린다. 추가로 몇 년 더 일을 해야 ‘어떤 분야에 전문적인 기자’로 거듭날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사람이 그러한데 사람이 만든 법 역시 안착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법과 제도가 시행되면 최소 3년의 시간은 걸린다. 여건이 되는 사업장은 기존 시스템을 개선하고, 여건이 안 되는 사업장은 시스템을 마련하고 적용하는 데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 신중하게 점검하면서 공론을 이끌어 가야 한다. 지금처럼 법의 효과가 없다며, 단정 짓기만 해선 산업재해 문제를 해결할 길이 막힐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사고 없는 사업장으로 변모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는 기사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그게 지금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다.

안전관리 노동자 (heine030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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