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국가정보원이 18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과 보건의료노조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군사독재 시절 ‘공안통치’가 부활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윤석열 대통령이 외교에서 보여준 실책을 덮거나 국정원 대공수사권 복원을 위해 무리하게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 압수수색, 2015년 이후 두 번째
노동개혁 드라이브·여론 무마용 ‘공안몰이’

정부가 공권력을 투입해 민주노총 사무실을 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영삼 정부는 민주노총이 합법화되기 전인 1997년 1월10일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과 관련해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19년이 지난 뒤, 2015년 11월21일 박근혜 정부에서도 민주노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해 노정관계가 파국을 맞았다. 그때 상황과 현재의 모습이 아주 닮았다.

2015년 당시 서울경찰청이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건설노조·공공운수노조 등 8개 단체 사무실 12곳을 동시다발로 압수수색했다. 이들 노조가 세월호 관련 집회와 총파업, 민중총궐기대회 등 8건의 불법 집회·시위를 주도하고 수배 중이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도피를 도왔다는 혐의였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저성과자 일반해고 메시지를 던진 ‘공정인사 가이드라인’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 등 2대 지침을 밀어붙이고 여당은 파견근로 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을 추진할 때였다. 2014년 세월호 참사에 이어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 직사로 농민 백남기씨가 중태에 빠져 결국 사망하는 등 일련의 사건으로 ‘살인정권’이라는 구호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정부가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시장 구조개편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정권의 위기를 모면하려 무리한 ‘공안몰이’를 했다는 점에서 지금과 매우 유사하다.

경찰이 민주노총에 투입된 것은 2013년 12월에도 있었다. 철도노조 파업을 주도한 김명환 당시 철도노조 위원장이 민주노총에 있다는 이유로 경찰이 강제로 체포를 시도하려다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경향신문 사옥 1층 유리문과 집기가 파손되는 등 손해를 입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0월 영장 없이 강제진입한 것은 위법하다며 국가가 민주노총에 469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국가보안법 혐의로 국정원 나선 것은 처음
노동·사회단체 “국정원 대공수사권 복원 노리나”

하지만 이번 압수수색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정원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이전과 차이가 크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을 위해 노동자를 간첩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2020년 12월 국정원법이 개정되면서 내년부터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 대공사건에 대한 수사권한이 경찰로 넘어간다.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날 전방위적 압수수색은 국정원이 자신의 가장 강력한 권한인 대공수사권만은 유지하겠다는 시위에 나선 셈”이라며 “피의자들의 인신구속 절차가 없는 상황에서 고가사다리까지 동원한 이날 압수수색은 보여주기와 언론플레이를 위한 것이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가뜩이나 얼어붙은 노정관계는 롤러코스터를 탈 것을 보인다. 한국노총은 “회계 장부로 노조를 부패집단으로 몰더니 이제는 빨갱이 집단으로 몰아가는 것이냐”며 “누가 봐도 과해 보이는 압수수색 퍼포먼스가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지키려 벌인 쇼가 아니기 바란다”고 입장을 냈다. 이달 말까지인 노조 회계장부 비치·보존 의무 자율점검 기간이 끝난 뒤 노동부가 과도한 회계자료 제출을 요구할 경우 갈등 국면은 노동계 전체로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 설 연휴가 지난 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등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과 파견업종 확대 등 파견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자문단과 연구회 가동을 본격화 할 것으로 보여 노정 간 긴장감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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