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해가 바뀌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제시한 6대 국정 목표 중 4번째로 미래를 이야기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세계사적 대전환의 시대’에 ‘글로벌 선도국가로의 도약을 목표’로 담대한 미래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의 담대한 미래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대통령도 고용노동부 장관도 입에 달고 살던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새해 벽두부터 화제가 된 챗지피티(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가 떠올랐다. 대화창에 “장시간 노동과 중대재해 간의 관련성(realtionship between long working hours and occupational fatality)”이라고 적어 넣자 몇 초 만에 답을 내놓았다.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장시간 노동과 중대재해(occupational fatality) 사이의 연관성을 제시하는 증거가 있다. 연구에 따르면 장시간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일터의 사고와 손상의 위험이 증가한다. 이러한 위험 증가의 한 가지 이유는 장시간 노동이 피로와 각성의 저하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인지와 신체활동 수행 간의 부조화를 초래할 수 있으며 실수나 오류의 가능성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장시간 근로는 업무의 일부로 기계나 차량을 작동시키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졸음운전이나 다른 형태의 조작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장시간 노동은 만성적 스트레스와 다른 건강 문제들로 이어질 수 있고, 이것은 결국 일터 사고와 손상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주의가 산만해지거나 인지 능력이 저하돼 건설업이나 제조업과 같은 특정 유형의 직무에서 손상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장시간 노동과 중대재해 사이의 관계는 복잡하며 수행되는 일의 유형, 근무 조건, 건강과 웰빙의 개인차와 같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반적으로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고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긴 노동시간의 문제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공지능의 총기(聰氣)에 감탄하고 인간지능의 망기(忘棄)에 통탄했다. 중대재해 감축과 장시간 노동은 양립할 수 없다. ‘미래’노동을 연구했다는 전문가들과 노동부 장관은 챗봇도 아는 사실조차 외면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30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정권의 노골적인 친자본 반노동 행보와 노동부의 과거 행적에 근거한 불신과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나름 관점 잡힌 현실진단과 기본원칙을 제시했고, 단편적 정책의 나열에서 벗어나 전체적 조망 속에 정책과제를 배치하고자 한 노력이 엿보였기에 비교적 후한 점수를 줬다. 정권은 바뀌어도 안전보건행정 공무원들이 그간 시행착오 속에서 균형을 잡고자 애썼구나 했다. 그러나 지난달 12일 발표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은 연장근로시간 산정단위 연장에 집착했다. 수개월간 평균 노동시간만이 아니라 하루 노동일 길이도 건강과 안전에 중요했지만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노동부 장관은 권고문 어디에서 발견했는지 모를 ‘근로시간 단축, 건강권 보호, 노동의 질 개선을 위한 다양한 개혁과제’들이 균형감 있게 제안됐다며 노동시장 개혁 완수를 다짐했다. 노동부는 지난달 30일 30명 미만 사업장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시행에 계도기간 1년 연장 검토를 발표했다. 장관은 이달 2일 30명 미만 중소기업 간담회에서 특별연장근로 활용, 계도기간 연장 검토와 계도기간 중 법 위반에 대해 사법처리 가능성 최소화를 재차 확인했다. 지난해 연간 노동시간은 한국이 1천915시간으로 독일(1천349시간), 일본(1천607시간), 미국(1천791시간)을 훌쩍 넘어서고 있지만 ‘글로벌 선도국가’를 지향하는 정권에서는 장시간 노동부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5위도 부족해 당당히 1위를 넘볼 태세다. 입법부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취지로 개정한 법 집행을 행정부가 공공연히 해태하겠다고 나선다. 이전 정부의 거의 모든 정책 방향을 부정하고픈 현 정부가 유독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에 역행하는 사안에서는 전 정부의 행태를 따르고 있다.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담고자 했던 공무원들의 실낱 같은 영혼조차 흩어져 가는 듯 하다.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서 밝힌 중대재해 현 주소에 대한 4가지 진단 중 하나가 ‘안전 의식과 문화는 여전히 미성숙’하다는 것이었다. ‘생산’우선 관행과 ‘빨리빨리’ 문화가 여전히 잔존하고, 사회 전체의 ‘안전을 보는 눈’이 취약하다고 스스로 진단했지만 사회 전체보다 노동부의 안전보건 백안(白眼)이 문제다. 안전보건 법·제도 및 정책, 안전의식과 문화 전반에 걸쳐 기존의 관점을 넘는 혁신적 방안을 모색한다며 중대재해 감축을 내세우면서도 노동시간 교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챗봇도 알만한 자가당착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이는 노동부가 안전보건 정책 수립에 있어 전문가 위탁과 헤어질 결심, 소란스럽고 버거운 사회적 논의와 합의과정을 감내할 결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대상화된 노동자, 물신에 빠진 기업, 영혼 없는 관료가 아닌 안전보건정책 및 시스템 구축과 집행에 노·사·정이 각각의 ‘주체(self)’로 기능하는 것이 그렇게도 떠받드는 자율 규제(self-regulation)의 진의다. 순식간에 응답창이 완성되는 챗지피티가 대세일지라도 인공지능보다는 인간지성에 의지하자. 한 줄 대화창을 채우는 것조차 삐걱거리고 더딜지라도 최소한 일터 안전보건 문제에 대해서는 공식적이고 일상화된 노·사·정 협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