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9. 8. 선고 2020가합531180 판결

1. 사실관계

최종연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최종연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원고들은 중국동방항공(이하 ‘피고’)과 2018년 3월께 근로기간 2년의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14기 한국 국적 승무원들이다. 원고들은 중국 상해시 거점의 미주·구주·아시아 노선 또는 한·중 노선 등 항공편의 승무에 종사했다. 원·피고 간 체결된 근로계약서 42조 단서는 근로계약기간 종료시 쌍방의 합의에 따라 재계약될 수는 있으나, 계약종료 시점에 피고의 재정상황이 악화돼 있거나 항공산업의 전체적인 경기가 저하되는 등 재계약을 기재하기 어려운 경우 재계약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2020년 1월7일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확인된 뒤 같은달 20일 한국 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고, 같은해 3월11일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피고는 2020년 2월께 한국승무원 전원에 대한 휴직동의서를 징구한 후, 같은해 3월9일 14기 한국 국적 승무원 73명 전원에 대해 계약만료일 2일 전 이메일로 각 ‘계약기간 만료 고지서’를 보내 근로계약 갱신 거절을 통보했다. 피고는 위 고지서에서 ‘회사는 현재 전반 항공시장의 변화, 그로 인해 당사의 경영이 비교적 큰 영향을 받았다’며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했다. 이에 근로계약 갱신이 거절된 한국 국적 승무원 73명 중 70명이 피고의 한국지점을 대상으로 2020년 4월3일 해고무효확인 및 임금 청구의 소를 제기했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2년 9월8일 원고들의 청구를 전부 인용했다.

2. 원·피고 주장의 요지

원고들은 정당한 갱신기대권 및 갱신 거절의 합리적 이유 없음을 주장했고, 피고는 근로계약서 42조의 내용 및 코로나19로 인한 항공시장의 급격한 악화 등 사정에 비춰 계약 갱신기대권 자체가 성립하지 아니하며, 설령 성립하더라도 항공시장의 악화와 피고의 경영사정 악화로 인해 갱신 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주장헤ᅟᅢᆻ다.

그 외 원고들의 근로계약 개시 이전의 일정이 계속근로 기간에 산입돼 2년을 도과하므로 무기계약직 근로자의 지위에 있는지에 관한 다툼이 있었으나, 법원은 위 근로기간 산입을 불인정했다.

3. 판결의 요지

가. 갱신기대권 인정 여부

종래 대법원 판시와 같이, 이 사건에서도 근로계약상 요건 규정 또는 근로관계의 제반 사정에 비춰 당사자 간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고, 근로자에게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의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이 사건에서 원·피고 간 체결한 근로계약 및 채용공고에는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기준 내지 요건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으나, 원고들은 앞서 입사한 한국 국적 승무원들이 업무고과상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대부분 정규직으로 근로계약을 갱신했던 점, 취업규칙상 업무고과가 관리돼 온 점, 입사 후 피고가 기간의 정함 없는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한 점, 피고가 거류증·건강증 갱신을 요구하고 계약만료 이후에 실시되는 연간교육 일정을 배정한 점, 원고들 중 상당수가 신규 기종의 비행자격 훈련에 투입됐다는 점, 일부 원고들의 비행 정지가 계약만료 직전에 해제됐음을 들어 정당한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상판결은 위와 같은 피고의 조치에 관해 필요시 전체 한국 승무원 211명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원고들에 대한 선별적인 조치가 가능했다고 보면서 원고들에 대한 근로계약 갱신을 전제로 이뤄졌다고 판단하는 한편, 근로계약서 42조는 계약갱신을 거절하는 합리적인 사유를 예시한 예외로서 그러한 사유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곧바로 갱신기대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나. 갱신 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여부

피고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항공수요의 급감으로 경영 악화가 발생했고 원고들이 대부분 한·중 노선의 투입을 전제로 채용됐으나 한·중 노선 항공수요가 계속해 악화되는 등 사정을 기초로 갱신 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으나, 대상판결은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해 계약 갱신 거절의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봤다.

1) 피고가 주장하는 경영 악화의 사정은 원고들의 재계약 체결을 거절한 이후 소송 계속 중 코로나19 사태가 악화된 상황에 기초한 것이고, 항공수요 회복 전례 및 실제 코로나19 기간 항공수요 통계에 비춰, 재계약 체결을 거절한 2020년 3월9일 당시에는 재정상황 악화 또는 항공산업의 전체적 경기가 저하됐다는 사유 발생이 명백하지 아니하다고 보았다.

2) 2020년 말일 기준 피고 소속 승무원이 전체 임직원 8만1천157명 중 2만1천149명을 차지하는데 이 중 외국인 승무원은 353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피고 운영비용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2019년 16.4%, 2020년 20.9%)과, 피고의 사업 및 매출규모를 고려하면 원고들 전원의 근로계약 갱신을 거부할 정도의 경영상 필요성이 충분하다고 인정되기 어렵다.

3) 원고들에 대한 국내선 전환 배치의 가능성, 고용유지지원금 충당의 가능성, 인력 구조조정의 미실시, 나머지 한국 승무원의 유·무급휴직 실시를 통한 고용관계의 유지 등 사정에 비춰, 피고가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영상 위기가 예상되자 원고들에 대한 재계약 체결을 일률적으로 거부했을 뿐 재계약 체결 거부를 회피 또는 최소화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4) 대상자 선정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원고들의 업무고과 및 중국어 등급 평가를 지속적으로 관리한 점에 비춰 갱신 거절 대상자를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선정했다고 보기 어렵다.

다. 미지급 임금 지급의무의 범위

원고들은 미지급 임금 산정시 피고가 퇴직금을 산정한 평균임금 액수를 그대로 기준으로 삼았고, 이에 대해 피고는 위 평균임금에는 항공수요 저하 이전에 원고들이 승무업무를 수행할 당시의 비행수당이 포함돼 있으므로 이를 제외하고 최저임금으로만 미지급 임금을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비행수당이 항공승무원 본연의 업무에 대한 통상적인 근로의 대가로서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에 해당하는 이상 해고 기간 임금에 포함돼 산정돼야 하고, 단지 원고들 외 나머지 한국 국적 승무원들이 피고 사정으로 인해 비행수당을 지급받지 못한다고 해 달리 판단할 수 없다고 봤다.

4. 판결의 의의

가. 갱신 거절의 합리적 이유 여부의 판단 기준

이 사건에서는 원·피고 간 대법원이 소위 김천시립예술단 사건(대법원 2017. 10. 12. 선고 2015두44493 판결)에서 판시한 바와 같이 대규모의 갱신 거절의 경우 그 필요성, 최소화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대상자의 선정, 차별적 대우 여부 등 보다 엄격한 판단기준이 적용되는지 여부가 문제됐다. 피고는 김천시립예술단 사건에서는 사용자가 신규채용 방식으로 계약갱신을 하겠다면서 갱신 거절을 한 점이 이 사건과 상이하므로 위 대법원 판단기준이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원고들을 포함한 14기 한국 국적 승무원 전원을 대상으로 예외 없이 재계약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근로관계를 종료한 것은 근로계약 갱신에 대한 원고들의 정당한 기대권을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조치에 해당하므로, 그러한 조치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 여부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설시했다(판결문 26면). 위 판단 부분은 김천시립예술단 사건에서 대법원의 판단기준이 갱신 거절에 관한 사용자의 요구 내지 구체적인 방식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대규모의 갱신 거절에 해당하기만 하면 적용된다는 점을 확인한 의의가 있다. 다만 이 사건을 떠나서 ‘대규모’의 갱신 거절에 관한 기준이 무엇인지, ‘대규모’의 갱신 거절이 아닌 경우에도 갱신기대권을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경우가 있을지에 관해서는 앞으로 법리 형성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나. 갱신 거절의 합리적 이유에 관한 구체적인 판단

이 사건에서 코로나19로 인해 피고의 운항 실적, 특히 원고들이 주로 근로했던 상해 기점 국제선 운항 실적이 결과적으로 상당 부분 악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근로계약상 갱신 거절 사유의 합리성 판단 시점을 피고가 갱신 거절을 통보한 시점인 2020년 3월9일 무렵으로 판단한 후, 당시를 기준으로 ‘재정 악화 및 항공시장의 전체적인 경기 저하’가 명백히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의의가 있다. 여기에는 원고들이 주로 근로한 국제선 외에 피고 국내선의 항공 실적이 이미 2020년 3월에 반등한 후 일정한 회복세를 보인 점 및 사스(중동급성호흡기증후군) 등 전례에 비춰 이러한 항공수요의 회복탄력성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전제돼 있다고 보인다.

당연해 보일 수도 있으나, 위 대상판결은 갱신 거절 당시에 합리적 이유를 어느 정도로 ‘예측’할 수 있었는지 여부보다는, 당시에 그러한 사유가 실제로 명백하게 발생했음을 요구한 것이라고 보인다. 만약 갱신 거절 사유의 예측가능성에 관한 합리성 판단이 다툼의 대상이 될 경우 이는 판단 기준이 모호해질 뿐더러, 경영사정에 관한 정보의 비대칭하에서 근로자에게 불리한 반대입증을 요구하게 된다. 기간제 근로자에게 갱신기대권을 인정하는 취지는 결국 기간제 근로계약의 남용을 방지하고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함으로써 근로조건 보호를 강화하려는 데 있는 바, 이 부분 대상판결은 갱신 거절의 합리적 이유에 관해 실증적인 판단을 요구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다. 국적에 의한 차별

이 사건 판결에서 대상판결은 피고가 한국 국적 승무원을 제외한 다른 외국인 승무원에 대해서는 전혀 구조조정을 시도하지 아니했고, 한국 국적 승무원에 대해서만 대규모로 고용관계를 종료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명백한 차별적 대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판결문 30면). 갱신 거절의 합리성에 관한 판단 기준의 하나로서 차별적 대우를 판단한 것이긴 하나 사실상 국적에 의한 차별을 인정한 경우로서 의의가 있고, 한국 국적 및 다른 외국 국적 승무원의 업무내용 및 환경에 사실상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인정될 수 있었다고 보인다.

5. 결어

비록 2년 넘게 변론이 진행된 후 1심이 종료되고 항소심에 계류 중이나(서울고등법원 제1민사부 2022나2040407호), 위 대상판결은 기간제 근로자의 갱신 거절에 관해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확인하고 차별적 대우를 인정한 의의가 있다. 또한 법원은 상소 기간 장기화와 실질적인 구제를 위해 판결 직전까지 장기간 복직에 관한 조정을 시도했다. 1심에서 이러한 조정을 시도한 전례가 전무했다는 점에서 진지하게 조정에 노력한 재판부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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