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원인을 규명해야 할 중대재해 원인조사가 일선에서는 범죄수사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해 관련 정보공개 수준이 취약하다 보니 중대재해로부터 예방책을 찾겠다는 취지조차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10일 중대재해 조사 관련 정보의 공개 실태와 해외 사례 분석 이슈페이퍼를 발간하고 이같이 주장했다. 이들은 산업안전보건법 취지에 부합하는 중대재해 보고서를 생산할 수 있도록 조사제도를 전면 개선하고, 재해조사 보고서의 공개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률 “중대재해 예방” 시행규칙 “위반 수사”

중대재해는 사망자 1명 이상 혹은 3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 2명 이상 발생한 재해다. 부상자 또는 직업성 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도 중대재해로 본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중대재해 발생시 “원인 규명 또는 산업재해 예방대책 수립을 위해 그 발생 원인을 조사할 수 있다”(56조)고 정하고 있다. 원인을 밝히고 예방대책을 수립하라는 취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나 같은 법률 시행규칙은 다르다. 이 법의 시행규칙 71조는 “중대재해 발생 원인이 사업주의 법 위반에 기인한 것인지 등을 조사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이승우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모법과 달리 시행규칙은 중대재해 조사가 사업주의 법 위반에 있는지를 조사한다고 명시해 법 취지를 왜곡했다”며 “원인 규명과 예방대책 수립 목적으로부터 사업주의 법 위반 조사로 뒤틀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대재해 초점이 범죄수사에 맞춰지면서 중대재해 관련 정보는 ‘수사자료’로 전락했다. 이 연구위원은 “재판 중인 산재사건 재해조사 의견서 정보공개청구는 수사자료라는 이유로 비공개 처리된다”며 “산업안전보건법 취지에 부합하는 보고서는 생산되지 못하고 있고 고용노동부도 법 위반 여부를 드러내는 재해조사 의견서를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노동당국 “영업상 공개 안 돼”
검찰은 정작 “방문시 일체 공개”

그나마 안전보건공단이 작성하는 재해조사 의견서는 노동부의 중대재해 보고서에 비해 자세하지만 공개가 어렵다. 홈페이지 같은 공간에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정보공개청구를 해도 소극적이다. 이 연구위원은 “직접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한 결과 노동부와 공단은 개인정보 또는 경영·영업상 비밀을 빌미로 공개를 꺼렸다”고 지적했다. 황당한 대목은 노동당국과 달리 수사기관인 검찰은 “검찰청을 방문해 열람 또는 등사 신청을 한다면 재해조사 의견서, 산업안전 근로감독 결과 일체 자료를 공개한다”는 취지로 응답했다는 점이다.

해외는 다르다. 미국은 홈페이지에 산재 사망사고 관련 정보를 게시하고, 누구나 사업체 이름과 지역, 노조 유무, 업종, 사고유형, 원인을 알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 영국도 산재가 발생하거나 보건안전법 위반으로 기소된 모든 사업장의 이름을 포함한 정보를 공개한다. 기소·재판 결과와 별도로 개별 산재의 원인과 예방대책도 분석해 보도자료 형태로 제공한다. 호주나 캐나다 같은 나라도 마찬가지다.

이 연구위원은 “(해외와 달리) 노동부는 어떻게든 사업체의 경영·영업상 비밀을 보호해 주려 한다”며 “중대재해 보고서를 강화하고 보고서의 법적 위상을 명료하게 하는 법 개정을 비롯해 재해조사 보고서 공개를 제도화하고, 개별 산재와 산업안전 근로감독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