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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가 “그만둬”라고 말한 것은 회사의 일방적인 명령으로서 해고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노동자가 해고를 승낙한 것이 아니므로 구두로 해고한 것은 서면통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6-3행정부(홍성욱·최봉희·위광하 부장판사)는 통신장비 제조업체 A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회사가 상고하지 않아 항소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사측, 근태 지적 면담 중 해고 취지 발언

2019년 1월 1년간 계약기간을 정해 A사에 입사한 B씨는 그해 4월께 사내이사 C씨, 연구소장 D씨와 면담했다. C씨와 D씨는 이 자리에서 B씨의 태도를 지적했다. 간부들은 △입사 두 달 만에 사흘간 휴가를 사용했는데도 일방적으로 통보한 후 무단결근한 점 △중요 행사에도 정시 퇴근을 고집해 퇴근을 강행한 점 △실적이 없는데도 4대 보험료 과납금 반환 및 급여 정산을 요구한 점 등을 문제 삼았다.

갈등은 이내 폭발했다. B씨 증언에 따르면 사측은 면담 도중 “앞으로 연장근무와 주말 초과근무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B씨는 “그렇게 안 한다면 더 이상 일하지 말라는 말이냐”고 되물었고, 사측은 “그렇다. 우리는 같이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B씨는 녹음을 시작하면서 4대 보험료 과납금 반환과 급여 정산을 요구했다.

이에 D씨는 “너는 우리 회사에 뭘 해 줬냐”고 따졌다. B씨는 “여태까지 숨도 안 쉬고 일했다. 자료 만들어 주고, 이제 단물 빨리니까 결국 쳐내는 것이지 않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D씨는 “그만둬”라고 했다. B씨는 그 자리에서 비품을 챙겨 사무실을 나와 이후 출근하지 않았다. 사측은 3주 뒤 산재보험 상실신고를 했다.

B씨는 부당해고라며 노동위원회로 달려갔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D씨가 ‘그만둬’라고 말한 것은 근로관계를 종료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서 해고에 해당한다”며 서면통지의무를 위반했다고 판정했다. 중노위도 초심을 유지하자 사측은 2020년 1월 소송을 냈다. 사측은 “그만둬” 발언은 면담을 중단하자는 취지였다고 주장했다.

법원 “근로계약해지 합의 증거 없어”

쟁점은 B씨가 근로계약 해지에 합의했는지였다. 1심 법원은 일방적인 해고가 맞다며 B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면담 과정의 지적은 B씨가 회사에 대항해 사직을 결심할 이유가 될 수 있으나 사측의 입장에서 해고할 동기가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며 “면담 녹음 전부터 이미 ‘자를 수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보인다”고 판시했다.

급여 정산 요구와 관련해서도 “회사에 뭘 해 줬는데”라며 B씨의 기여도만 따졌을 뿐 근로관계 종료에 대비하는 행동인지에 대해 사측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봤다. 나아가 “쳐내는 것이 아니냐”는 B씨 질문에 사측이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면담 당일 ‘그만둬’라는 말을 듣기 전에 먼저 B씨가 사직의 의사를 표시했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설령 급여 정산 요구를 사직의 의사로 본다고 하더라도 B씨가 급여 정산을 조건으로 사직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단 사직부터 하겠다고 해석할 근거는 없다”고 꼬집었다. 만약 B씨가 아무런 반론 없이 사무실을 나갔더라도 B씨가 승낙의 의사를 표시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만일 사측이 B씨가 사무실을 떠난 이후 ‘사직 의사를 번복하라’는 취지로 조치했는데도 B씨가 불응했다면, 해고가 아닌 사직으로 근로관계가 종료됐다고 볼 정황이 될 것”이라며 “하지만 이러한 조처를 한 아무런 증거가 없고, 오히려 산재보험 상실신고를 해 근로관계의 종료를 거듭 확인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만둬” 발언 이외에 서면으로 해고를 통지하지 않아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도 1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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