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가 시행 20년 만에 대대적인 수술을 받는다. ‘비숙련 단기순환’ 원칙을 폐기하고 ‘숙련인력 공급망’으로 외국인력 도입 방향을 틀었다.

1994년 시행한 ‘산업연수생 제도’가 송출비리와 인권탄압으로 얼룩지자 정부는 2004년 고용허가제를 도입했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 고용기회를 보장하면서 보완적으로 외국인력을 활용하는 ‘보충성’ △송출비리를 막기 위해 공공부문이 직접 외국인력 선정·도입·알선을 담당하는 ‘투명성’ △정주화를 막기 위해 체류기간을 제한하는 ‘단기순환성’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고 내국인과 동일한 노동법을 적용하는 ‘차별금지’ 원칙을 견지했다.

정부가 29일 발표한 ‘고용허가제 개편방안’은 외국인 중숙련 인력 공급을 확대하고, 외국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파견근로 등을 허용하는 것이 뼈대다. 인구감소가 본격화되면서 빈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되자 외국인력 도입을 확대해 노동 공급을 원활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이주노동자의 요구보다는 기업과 사업주의 필요에 따라 외국인력 체류기간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고용허가제를 개편한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체류 장기화라는 방향은 맞지만 인간다운 노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은 여전히 미비하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비전문인력 ‘사업장 변경 제한’ 현행 유지
중숙련 인력 ‘일정기간 근무 후 사업장 변경사유 확대’

정영섭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집행위원은 “고용허가제의 체류기간이 늘어난 만큼 기본권도 획기적으로 개선돼야 하는데 그런 내용은 부족하다”며 “여전히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제한되고 10년 이상 체류해도 가족조차 초청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E-9 비자에 장기근속 특례를 도입해 ‘10년+α’ 동안 체류할 수 있도록 고용허가제를 개편한다. 그런데 장기근속 특례로 인정되면 일정 기간은 해당 사업장에서 근무하도록 해 ‘사업장 변경 자유’는 여전히 침해받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근속 특례 요건이 되려면 제조업의 경우 첫 직장에서 2년을 근무해야 한다. 직장을 바꿀 경우 의무 근무기간이 30개월로 늘어난다. ‘장기근속 특례’라는 미끼로 이주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당할 소지가 커진다. 정부는 사업주 귀책이 있는 경우에는 제한 없이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되, 일정 기간 근무 후 사업장 변경 허용사유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박종필 노동부 기획조정실장은 “고용허가제에서 사업장 변경은 가장 첨예한 쟁점”이라며 “노사TF를 구성해 논의하고 있는데 결과가 나오면 별도의 지침을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존 비전문취업(E-9) 비자의 경우 3년간 3회에 한해(이후 2년간은 2회) 사업장 변경이 허용하는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용허가제가 20년째를 앞둔 만큼 사업장 변경 문제도 유연하게 풀 때가 됐다”며 “잦은 이동은 시장을 교란시키는 외국인은 취업알선 때 직업이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부작용을 덜어내고 비전문인력 사업장 변경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0년 이상 장기체류 이후는?
영주권 신청자격 포함 과제 산더미

사업장 변경 자유 외에도 풀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E-9 비자로는 10년 이상 장기체류하더라도 영주권을 신청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고용허가제는 ‘가족초청’도 막혀 있어 ‘장기근속 특례’로 이주노동자가 한 번 입국하면 10년 이상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

비인간적인 임시 가건물 숙소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주노동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 지침’을 논의 중인 노사정은 최근 숙식비 공제기준을 노동자 1명당 기준에서 숙소 1실 기준으로 바꾸는 데 합의했다. 노동계는 “통상임금에 비례해 8~20%까지 공제하도록 돼 있는 숙식비가 최저임금 상승으로 지역 시세보다 훨씬 높아지고 있다”며 숙식비 절반을 사용자가 부담하고 지역별 시세에 맞게 숙식비를 책정하도록 제도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장인숙 한국노총 정책1본부 부본부장은 “고용허가제 개편방안이 사업장 변경 문제는 쏙 뺀 채 중숙련 인력 별도 트랙을 만드는 것에서 그쳐 우려스럽다”며 “체류기간을 확대한 만큼 기본권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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